조금 늦게 찾아온 희망, 영화 '새해전야'

영화 '새해전야' 포스터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영화 '새해전야' 포스터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홍지영 감독의 새 영화 '새해전야'가 2월 10일 오늘 개봉되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영화는 지난 2020년 12월 개봉을 염두 해 제작된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개봉 일정이 불가피하게 미루어졌다.

혹자는 한국판 '러브 액츄얼리'라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옴니버스 스타일로 등장인물들의 러브 스토리를 중심으로 하여 각 캐릭터들이 서로 관계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영화 '새해전야' 스틸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영화 '새해전야' 스틸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러브 액츄얼리'가 크리스마스 시즌을 배경으로 한다는 설정과 '새해전야'가 연말연시라는 시간대에 벌어지는 해프닝들을 다루었다는 점도 미묘하게 오버랩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새해전야'를 '러브 액츄얼리'에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우선은 인물들의 관계를 엮어주는 대표적 구심점이 명확하지 못하다. '러브 액츄얼리'에서는 '공항'이라는 공간이나 '음악'이라는 매개체가 그 역할을 해주었다고 하면 '새해전야'에는 인물들의 상황이나 관계를 구체화하는 대상을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러브 액츄얼리'의 얽히고 설킨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도와 견주기에도 '새해전야'는 부족하다. 이 부분은 주요 등장인물의 관계를 도식화하여 보면 극명하게 차이가 날 것으로 보인다.

영화 '새해전야' 스틸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영화 '새해전야' 스틸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네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 '새해전야'의 매력은 다른 영화와의 비교보다는 각 캐릭터들이 가진 사회적 정서에 대한 공감에 있다고 본다. 결혼에 실패한 돌싱, 모국의 삶에 회의를 느껴 타국으로 이주한 사람들, 국경을 초월한 국제결혼, 장애인에 대한 편견 등 현 세대에 있을법한 갈등을 로맨틱하면서도 현실성 있게 풀어내었다.

감독은 이러한 상황 속에 놓인 캐릭터들의 감정이 시간에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크리스마스 이후 새해를 맞이하기까지의 길지 않은 날들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해프닝과 쌓여가는 오해들을 적절한 호흡으로 풀어낸다.

영화 '새해전야' 스틸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영화 '새해전야' 스틸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그 속에서 피어나는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겉모습에 가려진 진심을 느끼게 하기도 하고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주는 계기를 찾기도 한다. 커플로 나오는 여덟 명의 배우들 모두 캐릭터의 개성을 잘 살려주었지만 특히나 눈길을 끌었던 것은 국제커플인 '용찬'의 누나 '용미'를 연기한 배우 염혜란이었다.

'새해전야' 포스터에도 '용찬'의 피앙세 역을 맡은 천두링이 아니라 염혜란이 이동휘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천두링은 이동휘가 들고 있는 태블릿 속에 자리한다. 이 대목에서 다시금 '러브 액츄얼리'를 언급하자면 '가족'이라는 테두리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던 소년 '샘'이 떠오른다. 지금은 어엿한 성인 배우로 성장해 여러 작품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토마스 생스터와 '용미' 역의 염혜란이 겹쳐 보이는 것은 그만큼 존재감이 뛰어났기 때문일 테다.

사실 영화 '새해전야'는 주연급 카메오들이 대거 등장해 낯익은 배우들의 모습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감초 같은 존재라는 표현이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기파 배우로 유명한 초특급 연기자들이 곳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와 반가울 따름이었다.

무엇보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서울의 북적이는 연말 풍경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남미의 풍광을 큰 스크린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이 의미 있었다.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개봉되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만약 이 영화를 제목에 걸맞은 시기에 보게 되었다면 요즘 시국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우울한 감정이 들지 않았을까 한다.

지난 시간들을 되새겨 앞으로의 날들을 더욱 값지게 여기자는 의미를 가지고자 한다면 오히려 설날을 앞두고 개봉되는 '새해전야'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조금 늦었지만 다시금 새해의 희망찬 기운을 북돋워 보자.
 전자신문인터넷 K-컬처팀 오세정 기자 (tweet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