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나는 '벼락거지'가 아니다.

글자 작게 글자 크게 인쇄하기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이 되고, 행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인성이 되고, 인성은 운명이 된다.' 오래된 격언이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라거나 간디의 말이라고도 한다. 누가 말했든 많은 사람이 금과옥조로 받아들이는 내용이다.

생각과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시대를 떠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 같다.

최근 '벼락거지'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많은 글은 물론 언론사 기사나 제목에서도 많이 사용한다.

벼락거지는 자신의 소득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오름에 따라 빈곤해진 무주택자를 일컫는 신조어다. 한순간에 큰돈을 번 '벼락부자'에 빗대 갑자기 집값이 너무 올라 가난해졌다는 자조 섞인 표현에서 시작됐다.

최근에는 주택뿐만 아니라 주식, 비트코인 등으로 많은 경제적 이익을 얻은 이들에 빗대어서도 많이 사용한다. 부동산이나 주식, 비트코인에 투자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박탈감이나 사회적으로 뒤떨어지고 있다는 자괴감마저 들게 하는 단어다.

벼락거지 이외에도 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한다는 '영끌'이나 빚을 내 투자한다는 '빚투' 등의 말도 많이 쓰인다.

그만큼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과 자산을 지키거나 불려야 한다는 조급함이 모두 녹아 있는 단어들이다. 얼마 전까지 많이 쓰인 '헬조선'이라는 단어도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나타내던 말이다.

모두 충분히 공감하고, 현실을 120% 담아낸 단어라고 생각한다.

불과 몇 년 만에 집값은 2~3배로 뛰어 서울은 물론 지방에도 10억원이 넘는 아파트가 넘쳐난다. 주식도 지난 하반기부터 무섭게 상승하며 2~3배 이상 가격이 오른 종목이 넘쳐난다. 비트코인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오죽하면 은행에 저축하는 사람들이 바보 취급을 받을까. 빚이라도 내어서 투자하지 않으면 '상대적 거지'가 된다는 단어까지 등장한 현실이 씁쓸하다.

그런데 벼락거지 등의 단어가 이런 박탈감이나 조급함을 부추기고 있지는 않은지 궁금하다.

더욱이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 언론이나 정치권, 심지어 정부까지 나서서 이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넘쳐나는 신조어의 홍수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사고'까지 지배하는 것 같은 상황이 안타깝다.

말은 그 시대상을 반영한다. 신조어의 출현과 사용은 어쩔 수 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신조어가 무분별하게 사용되며, 사회적 아픔이나 부조리를 필요 이상으로 부각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말은 그 사람이나 사회의 품격을 나타낸다. 과연 벼락거지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현 위치 그대로를 나타내고 있느냐 하는 것은 상식선에서도 공감하기 어렵다.

언어학자 놈 촘스키는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고 했다.

잘못된 단어들이 우리 사고를 지배하고, 이를 증폭시키고 있는지 한 번쯤 되돌아봐야 한다.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이 되고, 행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인성이 되고, 인성은 운명이 된다'는 말은 사람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도 다르지 않다. 사회적 책임이 있는 개인이나 기관만이라도 더 이상 자극적 단어로 상대적 상실감을 유발, 사회적 갈등을 키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운 말, 아름다운 말은 아름다운 생활과 사고로 이어진다. 그러면 이 사회도 조금은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감을 품는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

[데스크라인]나는 '벼락거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