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순도 염화수소'도 탈일본...'반도체 소재 국산화' 거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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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산업, 삼성전자와 품질평가
빠르면 상반기 중 양산라인 적용
수입 의존 '핵심 소재' 대체 기대
소부장 전 분야서 국산개발 가속

반도체 핵심 소재의 하나인 '고순도 염화수소(HCl)'가 국산화된다. 그동안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이었던 소재를 국산으로 대체하고, 국내 반도체 소재 산업 생태계가 강화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일본 수출규제 조치 이후 지속한 핵심 반도체 소재 국산화가 흔들림 없이 추진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화학 업체 백광산업은 삼성전자와 함께 고순도 HCl을 국산화한다. 현재 양산 라인 적용을 위한 품질 평가가 진행되고 있으며, 빠르면 상반기 중에 승인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공장 전경.<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공장 전경.<사진=삼성전자>

고순도 HCl은 반도체 웨이퍼를 세정하거나 웨이퍼를 깎는 식각 공정에서 식각액으로 사용되는 소재다. 고성능 시스템 반도체 증가에 따라 사용량이 늘고 있다. 삼성전자가 국내 HCl 수요의 약 80%를 소비할 정도로 반도체 산업 사용량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고순도 HCl은 대부분 해외에 의존해 왔다. 일본 화학업체 토아고세이와 독일 산업 가스 전문업체 린데가 과점 공급했다. 국내 업체도 일부 상용화한 사례가 있지만 품질 문제를 겪는 등 해외 의존도를 낮추지 못했다.

이에 국산화 필요성이 커지고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 이후 공급망 재편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삼성전자와 백광산업 협력이 급물살을 탔고, 생산 준비까지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백광산업 관계자는 “(삼성전자로부터) 품질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 “최종 결과를 지켜봐야 하지만 양산, 공급할 준비는 끝낸 상황”이라고 전했다.

2019년 7월 일본 정부는 우리 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불화수소,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 불화폴리이미드의 대한국 수출을 규제했다. 우리나라 주력 산업인 반도체, 디스플레이에 영향을 미쳐 한국 정부를 압박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일본의 조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기업의 핵심 소재 공급망 재편을 불러일으켰다. 수출 규제 품목이던 불화수소, EUV용 포토레지스트, 불화폴리이미드의 대체뿐만 아니라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전 분야에서 수급 다변화와 국산화를 촉진했다.

고순도 HCl도 이 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개발에 속도가 붙은 것으로, 또 하나의 국산화 사례로 기록될지 주목된다. 일본 수출규제 후 SK머티리얼즈가 불화수소 가스 국산화에 성공했고, 솔브레인·이엔에프테크놀로지·램테크놀로지는 일본 스텔라케미파·모리타화학공업의 액체 불산들을 대체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라인.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반도체 라인. <사진=삼성전자>

소재 개발은 '축적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반도체 산업 특성상 개발에 성공해도 면밀한 품질 검증이 필요, 실제 적용까지 오래 걸린다. 또 소재뿐만 아니라 반도체 부품이나 장비 모두 장기 투자가 필요해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는 작아 보일 수 있지만 국산화 노력과 시도는 지금도 각 분야에서 이어지고 있다.

엘오티베큠은 영국 에드워드, 독일 레이볼드, 일본 시마즈 등 해외 업체가 과점하는 터보(고진공) 펌프 생산에 도전하고 있다. 동진쎄미켐은 EUV용 포토레지스트, 미코세라믹스는 반도체 장비 핵심 부품인 세라믹 히터를 각각 개발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케이씨텍, 엘오티베큠, 미코, 뉴파워프라즈마, 에프에스티 등에 투자하며 반도체 소부장 산업 생태계 강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소재업계 고위 관계자는 “일본과의 긴장 관계가 여전해 반도체업계에 수급 다변화와 공급망 강화는 여전히 중요한 화두”라면서 “이에 따라 국산화 노력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이어져서 국내 산업 발전의 기회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