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스타트업 명예의전당

이준희 기자
이준희 기자

명예의전당. 스포츠·예술 등 특정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큰 존경을 받는 인물을 기념하기 위해 설립된 기념관·단체·모임을 말한다.

대표 인물로는 아시아 최초로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명예의전당에 입성한 박세리가 있다. 지난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맨발의 투혼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를 보고 꿈을 키워 온 박인비, 고진영 등 '박세리 키즈'는 이제 세계 여자프로골프를 호령하는 최고 스타가 됐다.

스타트업의 성공 엑시트(투자금 회수)는 창업자나 투자자에게 이익을 줄 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에도 활력을 부여한다. 미국에서는 실리콘밸리 비즈니스 엔젤인 '페이팔 마피아'가 스타트업 명예의전당으로 불린다. 페이팔 마피아는 미국 전자결제 시스템 회사 페이팔의 창업자들이 2003년 이베이에 매각한 자금을 밑천 삼아 창업자·투자자로 거듭나며 형성된 그룹이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유튜브의 스티브 천 등이 참여하고 있다.

국내에도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에 4조7500억원에 매각된 배달의민족, 글로벌 데이팅서비스 기업에 2조원에 인수된 하이퍼커넥트 등이 유사하다.

최근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배달의민족 창업자 김봉진 의장이 각자 개인 재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5조원 및 5000억원을 사회에 기부하겠고 선언, 신선한 충격을 줬다. 자수성가형 벤처 창업자가 기존 재벌 대기업이 부를 대물림하는 관행을 깨고 성공의 씨앗을 사회와 나누기로 한 것이다. 이제 국내에도 '카카오 마피아' '배민 마피아'와 같은 '스타트업 명예의전당'이 등장할 때가 됐다.

셀트리온은 최근 국내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인 '인천 스타트업파크' 사업에 참여해서 바이오 벤처기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신한금융그룹과 손잡고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해 실증 자원을 지원하고 협업 모델 개발 및 투자 연계를 하는 한편 해외시장 진출 지원까지 진행한다. 셀트리온을 시가총액 82조원으로 키운 서정진 명예회장은 원격의료 스타트업을 설립해서 창업가로 되돌아갈 계획도 밝혔다.

이제 '한국형 스타트업 명예의전당'을 정립할 때다. 무엇보다 좋은 사례가 늘어야 한다. 성공한 벤처기업가가 창업에 도전하는 후배를 육성하고, 필요한 경우 직접 투자자로 나서는 등 우리 벤처 생태계의 선순환을 이끌어 주길 기대한다.

이준희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