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반도체 팹리스가 매물로...해외자본에 팔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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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간 1년에 한 번 꼴로 팔려
최근 매그나칩 인수 추진까지
대부분 중국계 자본·기업으로
핵심인력·기술유출 경계해야

국내 반도체 설계 전문(팹리스) 업체들이 시나브로 해외에 매각되고 있다. 척박한 국내 산업 생태계에 경영 악화가 이어지면서 해외 자본에 인수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매그나칩이 중국계 사모펀드에 매각이 추진돼 기술 유출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는 줄 모르는 사이 국내 반도체 산업의 기반이 흔들린 지 오래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자신문이 국내 주요 팹리스 업체들의 주주 현황을 조사한 결과 해외 기업이나 자본이 국내 시스템 반도체 업체들의 최대주주에 오른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6년간 1년에 한 번 꼴로 주요 주주가 외국으로 바뀌었다.

2015년 6월 둥신반도체가 국내 메모리 개발 업체 피델릭스의 최대주주가 된 데 이어 2016년에는 장시롄촹구이구투자유한공사가 터치IC 업체 멜파스의 새 주인이 됐다. 2017년 에스윈(ESWIN)은 디스플레이 드라이버IC 업체 와이드칩스를 인수했으며, 2019년에는 실리콘마이크로테크놀로지가 국내 1세대 팹리스 업체로 꼽히는 실리콘마이터스 최대주주에 올랐다. 모바일용 특화 메모리를 만드는 제주반도체의 경우 최대주주는 아니지만 2018년 쉰제캐피털이 2대 주주가 됐다.

韓 반도체 팹리스가 매물로...해외자본에 팔려나간다

지분 투자나 인수는 기업의 합법적인 성장전략 중 하나다. 전략적인 협력이나 파트너 관계 구축을 위해 중요 지분을 교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국내 기업이 피인수 대상이 됐을 때는 경계해야 할 대목이 생긴다. 해외 자본 진입에 따른 인력이나 중요 정보가 해외로 이전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최근 국내 팹리스 업체를 인수한 곳은 대부분 중국계 자본 또는 기업인 점이 공통으로 나타나 이 같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피델릭스의 최대주주 둥신반도체는 2014년 중국 상하이에서 설립된 반도체 업체다. 멜파스를 인수한 장시롄촹구이구는 중국 투자전문 회사로 알려졌다. 멜파스 최대주주는 장시롄촹에서 2020년 롄촹전기로 바뀌었다. 와이드칩스를 인수한 에스윈은 중국 반도체 업체다. 실리콘마이터스의 최대주주 실리콘마이크로테크놀로지는 홍콩계 펀드로 알려졌다. 제주반도체 2대주주인 쉰제캐피털은 대만 반도체 업체 UMC의 계열사다.

투자는 특정한 목적에 따라 이뤄진다. 수익을 극대화하거나 필요한 기술이나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경우 등 다양하다. 그런데 최근의 팹리스 인수 사례 중 일부에서는 중국의 반도체 자립 의지가 엿보인다.

실제로 2017년 와이드칩스를 인수한 에스윈은 BOE를 세계적 디스플레이 업체로 만든 왕둥성 회장이 설립한 곳이다. 이 회사는 반도체 국산화를 목표로 출범했다.

왕 회장은 에스윈 홈페이지에 올린 인사말에서 “중국의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부족 문제 해결을 늘 꿈꿔 왔다”면서 “이 때문에 BOE를 물려주고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왕둥성 회장 인사말.<사진=에스윈 홈페이지>
왕둥성 회장 인사말.<사진=에스윈 홈페이지>

최근 중국계 사모펀드와 주식 매각 계약을 체결한 매그나칩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구동하는 반도체(DDI)를 만들어 OLED용 DDI를 확보하려는 중국 회사가 펀드의 배후에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DDI 업계 관계자는 “OLED 패널과 같이 DDI도 노하우가 필요한 기술”이라면서 “중국이 그동안 한국인 엔지니어를 대거 채용하고도 OLED DDI 개발에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 전체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매그나칩 인수에 나선 것 같다”고 주장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