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LG-SK, 배터리 분쟁 전격 합의' 배경과 전망

LG에너지솔루션 미국 공장 연구원들이 파우치 배터리셀을 살펴보고 있다<사진=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 미국 공장 연구원들이 파우치 배터리셀을 살펴보고 있다<사진=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연구원들이 배터리셀을 들어 보이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연구원들이 배터리셀을 들어 보이고 있다.

#2년여에 걸쳐 배터리 영업비밀 및 특허 침해 소송전을 벌인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ITC 결정 거부권 행사 시한을 하루 남긴 11일, 극적으로 합의했다. 양사는 급변하는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 적기 대응하고, 투자와 사업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2조원의 합의금과 함께 향후 10년간 추가 쟁송도 하지 않기로 했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파우치 중심에서 각형 및 원통형 배터리 중심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양사 소송으로 국내 업체들의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됐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전기차용 파우치 배터리 시장 공략을 위해 이 같은 대승적 합의를 끌어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슈분석] 'LG-SK, 배터리 분쟁 전격 합의' 배경과 전망

◇LG-SK, 전격 합의 배경과 전망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전기차 배터리 소송 분쟁이 2년 만에 일단락됐다. 백악관의 거부권 행사 시한 '데드라인'은 4월 12일(한국시간) 오후 1시까지로 바이든 대통령이 그 이전에 거부권을 행사했어야 했다.

ITC는 지난 2월 11일(한국시간) SK이노베이션에 최종 패소 판결을 내렸다. SK이노베이션이 증거 인멸 시도에 따른 자료 제출에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19년 4월 SK이노베이션을 ITC와 미국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각각 제소했다. LG에너지솔루션(당시 LG화학) 직원들이 이직하는 과정에서 핵심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증거 인멸 혐의에 따라 ITC에 조기 패소 판정을 요청했다. ITC는 이를 받아들여 LG에너지솔루션의 예비판결 승소 판정을 내렸고 지난 2월 최종 판결에서 LG 측 손을 들어줬다. SK이노베이션은 예비판결에서 패소한 자료 삭제에 따른 증거 인멸 사실이 매우 불리한 지점으로 작용했다.

LG와 SK가 극적 합의를 이뤄낸 데는 미국 행정부의 적극 중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는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뿐 아니라 특허침해 소송까지 포함하고 있다. 양사는 ITC에서 배터리 분리막, 양극재 특허 소송도 별도 진행 중이다.

ITC는 영업비밀 최종 판결과 관련해 LG 주장을 인용하면서 SK 침해를 인정하며 앞으로 10년간 미국 배터리 관련 부품 수입금지를 명령했다. 다만 SK이노베이션과 공급 계약을 맺은 포드와 폭스바겐 공급물량에 대해서는 각각 4년, 2년 유예조치를 내렸다.

미국 행정부로서는 양사 합의가 최선이었지만, 그러지 못하자 자국 이익에 반하지 않는 차선의 결정을 내린 것이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배터리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자국에 전기차 배터리 관련 부품 공급망을 구축하지 못한다. 이번 소송 이해 관계자인 포드 등 미국 완성차 업체들은 대부분 LG와 SK 주력 제품인 파우치 배터리를 사용한다. 이들 업체가 신차 출시 일정을 맞추기 위해선 LG, SK에 니켈·코발트·망간(NCM) 파우치 배터리를 적기 공급받아야 했다. 이에 바이든 행정부는 ITC 판결 이후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 구축, 일자리 창출 등 자국 경제 이익 효과를 모두 고려해 물밑서 양사 합의를 중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배터리 공급이 제대로 이뤄져야 했다”며 “중국을 배제하면서 파우치 배터리를 공급받기 위해선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미국 배터리 공장을 모두 가동해야 했다”고 말했다.

◇SK이노, 미국 배터리 공장 가동 위한 최선 결단

SK이노베이션은 LG에너지솔루션과의 최종 합의로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을 가동할 수 있게 됐다.

SK이노베이션은 바이든 대통령 거부권이란 실낱같은 가능성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LG에너지솔루션과 최종 합의하게 됐다. ITC 패소에 대한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낮은 데다 SK이노베이션 배터리뿐 아니라 소재·부품·장비 등에 미국 내 수입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에서 배터리 사업 자체를 영위할 수 없게 된다.

지동섭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 대표는 최근 주주총회에서 미국 배터리 사업과 관련해 “여러 가지로 상황이 어렵다”며 복잡한 속내를 보이기도 했다.

SK이노베이션은 3조원을 투입해 미국 조지아주에 21.5기가와트시(GWh) 규모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2개 공장에서 만드는 배터리는 폭스바겐과 포드 전기차에 탑재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 1·2공장이 가동되는 2023년 미국에서 21.5GWh 규모의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되면서 글로벌 생산 규모는 71GWh 규모로 늘어난다.

특히 포드와 폭스바겐 배터리 공급에 힘입어 배터리 사업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내다봤다. 배터리 적기 공급에 힘입어 추가 수주를 확대할 수 있어서다. 업계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 사업이 이익을 내기 위해선 배터리 공급 물량이 꾸준히 이뤄지고 공장 가동을 앞당겨 배터리 생산 수율을 90% 이상 끌어올려야 한다.

◇LG에너지솔루션 미국 전기차 배터리 시장 공략 가속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인정받으면서 현금보상까지 확보하게 됐다. 또 SK 자회사 지분 교환으로 분리막 공급망도 추가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LG는 SK로 넘어간 일부 직원들에 대한 소송까지 준비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내 파우치 배터리 고객사를 추가 확보할 발판을 마련했다. 전기차 배터리 제조 기술 경쟁력도 인정받게 됐기 때문이다.

포드, GM뿐 아니라 폭스바겐과의 협력도 강화될지 주목된다. 폭스바겐은 파워데이에서 각형 배터리 80% 이외 20% 파우치 배터리를 사용하기로 했다. 해당 물량을 두고 또 다른 파우치 배터리 업체들과 경쟁해야 했다. 파우치 배터리 생산능력이 가장 컸던 만큼 파우치 배터리가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전문가들은 양사를 위한 조속한 사태 해결을 강조해왔다. 소송으로 인한 미국으로 나가는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기보다 경영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양사가 배터리 산업계에 더욱 큰 리스크를 주지 않기 위해 대승적 결단을 내렸다”며 “K-배터리 시대를 이끌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지웅기자 jw0316@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