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61>다름의 기준이 있는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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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1학년 가을 즈음 기억이다. 수학과에 입학한 친구가 시무룩해 있었다. 입학 후 2학기가 되니 동기생 사이에 점점 성적 차이가 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특히 두 명이 두드러졌다. 시험 칠 때마다 만점이었다.

시험이 끝나면 조교들은 우선 그들 가운데 한 학생의 답지를 골라낸다고 했다. 어느 교재 수준보다 정확하게 풀어낸 이 답지는 조교들에게 채점 기준표처럼 쓰였다.

반면에 다른 한 학생의 답지는 정반대였다고 한다. 이 학생이 문제를 어찌 풀었는지 조교들로서는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언제나 그 끝엔 정답이 떡하니 적혀 있었다. 지금 이들 두 수재의 근황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는데 기준을 두고 있을까. 혁신이 봇물을 이뤘지만 논리 정연한 혁신은 흔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 난맥상에 가장 큰 원인은 모순적이게도 혁신이 흔해진 만큼 뭔가 다르다는 것 외에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실상 혁신이 기존의 것과 다른 무언가를 말한다면 그리 어려울 게 없다. 그러나 왜 그렇게 달라야만 하는지를 묻는다면 침묵과 함께 어색한 분위기를 피하기 어렵다. 우리는 늘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다름의 기준을 갖는 건 또 다른 내공과 안목이 필요한 듯하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일본 마쓰시타전기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평전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정작 이 사건의 발단은 19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니는 이즈음 VCR 시대가 왔다고 봤다. 아직 많이 팔리지는 않았지만 곧 안방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경쟁사인 JVC가 VHS라는 다른 방식을 내놓은 것이다. 이때 소니는 베타맥스 방식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두 기술은 비슷했지만 카세트 크기부터 여러 가지 면에서 달랐다.

초창기 가정용 VCR 시장에 두 가지 형식이 존재하는 셈이었다. 경쟁은 피할 수 없었고, 나머지 가전기업들엔 어느 편에 서느냐가 중요했다. 그 가운데 마쓰시타전기의 결정이 중요했다. 시장점유율 면에서도 그렇지만 고노스케의 영향은 컸다. 이 문제 중재를 위해 소니는 고노스케를 찾아간다.

이날 고노스케의 사무실 책상 위에는 뚜껑 없는 소니와 JVC 제품이 놓여 있었다. 제품을 한참 들여다본 고노스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베타맥스를 거절해야 하는 게 괴롭습니다. 그러나 JVC의 VHS 방식 부품이 더 적습니다. 우리 회사는 다만 얼마라도 더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을 택해야 합니다. 그래야 후발 주자라는 단점을 극복할 수 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도시바, 산요, NEC, 아이와, 파이오니아가 소니 손을 들어주었다. 이와 달리 마쓰시타, 히타치, 미쓰비시, 샤프는 JVC 편에 섰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후인 1988년 소니는 새 모델 출시를 중단하기로 한다. 그 대신 VHS 방식의 VCR를 생산하게 된다.

마쓰시타 평전에서 내 눈길을 끈 다른 대목도 있다. 종전 후 마쓰시타는 전범기업으로 지정돼 사정이 어려워졌다. 고노스케 처남 이우에 도시오는 분사해서 산요를 설립한다. 얼마 후 산요는 세탁기 시장에도 진출한다. 이즈음 고노스케가 이우에를 찾아왔다고 한다.

고노스케는 산요가 마쓰시타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을 택한 것에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 이유를 듣더니 자리를 털고 일어서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산요는 마쓰시타 방식이 아닌 일본 최초의 와류식 세탁기를 내놓는다.

요즘처럼 혁신이 흔한 시대에 무엇이 혁신 기준이 될까 한번 생각해 봄직도 하다. 그냥 다르다는 것 대신 다름의 기준이 있는 다름이 더 혁신다운 기준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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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