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파운드리 투자 시나리오는?…국내 투자 확대·대형 M&A 등 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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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회사·키파운드리 기존 팹 활용, 단기 성과 겨냥땐 가장 현실성 높아
용인 클러스터 EUV 라인 등 신설, 兆단위 투자 감안하면 가능성 있어
공급망 재편 등 큰 그림 보고 세계 3위 '글로벌파운드리' 품을 수도

SK그룹의 정보통신기술(ICT) 사업을 총괄하는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겸 SK하이닉스 부회장이 파운드리 투자 확대 방침을 밝히면서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파운드리가 향후 시장 판도를 뒤흔들 핵심 사업으로 부상하고 있어 SK의 투자 방향이 주목된다.

박정호 부회장은 지난 21일 개막한 월드IT쇼(WIS) 2021에서 기자들과 만나 “파운드리에 투자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팹리스 업체들이 (대만) TSMC 기술 수준의 파운드리 서비스를 해주면 좋겠다는 요청 사항이 있고, 이에 공감한다”며 “거기(파운드리)에 투자를 많이 할 생각이다”라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 파운드리 투자 시나리오는?…국내 투자 확대·대형 M&A 등 촉각

박 부회장의 발언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국내 팹리스와의 협력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국내 파운드리 팹 투자 확대 가능성이 점쳐진다.

현재 SK가 직접 운용 또는 지분에 참여한 파운드리 팹은 2개다. 하이닉스 자회사 SK하이닉스시스템IC와 지난해 사모펀드를 통해 인수에 참여한 키파운드리다.

하이닉스시스템IC는 중국 팹리스 시장을 겨냥, 현재 팹 설비를 중국으로 이전 중이다. 내년 초 작업이 마무리되면 청주 공장(M8)에 유휴 공간이 남는다. 키파운드리는 청주에 8인치 웨이퍼 기준 월 8만2000장 규모 생산능력을 갖춘 'M4' 팹이 있다.

따라서 SK가 단기간에 국내 파운드리 규모 확대에 나설 경우, 유휴 공간이 생기는 SK하이닉스시스템IC 팹과 키파운드리 팹을 우선 활용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성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키파운드리 M4에는 여유 공간이 없지만, 설비를 업그레이드하면 생산능력 증대 효과를 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M8과 키파운드리를 활용할 여력이 생긴데다 기존 장비와 공정을 다시 활용할 방안을 찾으면서, 이곳을 중심으로 파운드리 사업에 박차를 가할 공산이 크다”고 밝혔다.

신규 팹 투자 가능성도 제기된다. SK하이닉스의 대규모 팹이 들어서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파운드리 라인을 신설하는 방안이다. SK하이닉스의 용인 팹은 2023년부터 공사가 예정돼 있다. 클러스터로 기획돼 50여개 핵심 소부장 기업이 집결한다.

팹 건설 및 운용까지는 다소 시간은 소요되겠지만, 12인치 웨이퍼 제조라인과 첨단 극자외선(EUV) 공정을 활용한 파운드리 라인까지 도입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업계에 따르면 SK는 파운드리에 조단위 투자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신설 팹 구축도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라는 분석이다.

대형 인수합병 가능성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박 부회장은 지난 15일 기자들과 만나 “반도체 시장 전체가 크게 재편되고 있다”며 “시장에서 큰 움직임을 준비할 때”라고 말했다. 또 “국내에서 작은 반도체 회사를 인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큰 움직임을 준비하는 것이 급해 보인다”고 덧붙엿다.

이 같은 발언은 SK하이닉스가 인텔 낸드사업부에 이어 대형 M&A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을 낳았다. 파운드리 업체 M&A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2019년에 SK의 글로벌파운드리 인수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AMD의 반도체 제조 부문이 분사해 탄생한 글로벌파운드리는 2017년까지만 하더라도 TSMC에 이은 세계 2위 파운드리 업체였다. 하지만 2018년 7나노 공정 개발을 포기하면서 기술 경쟁력에서 TSMC, 삼성전자에 뒤처졌다. 현재는 업계 3위지만 시장점유율은 7% 정도다.

글로벌파운드리는 아랍에미레이트(UAE) 국부펀드인 '무바달라 컴퍼니'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19년 UAE 왕세자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삼성과 SK 총수를 잇따라 만나면서 매각 가능성이 제기됐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공정 기술에서 앞서 글로벌파운드리 인수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됐지만, SK하이닉스에게는 비메모리 사업 강화에 적합해 주목됐다.

글로벌파운드리는 미국, 독일, 싱가포르에 반도체 공장을 두고 있어 SK가 글로벌파운드리를 인수하게 되면 단숨에 업계 3위에 오를 뿐만 아니라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서 유리한 지리적 위치를 점하게 된다. '큰 그림'을 그리기에 적합한 셈이다.

다만 글로벌파운드리 인수는 간단치 않을 전망이다. 2022년을 목표로 기업공개를 추진하고 있는 글로벌파운드리는 기업가치가 200억달러(약 23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 인수에 90억달러를 투입해야 하는 SK가 또 다른 초대형 M&A를 추진하기에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