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쿠팡과 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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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 벤처유통부 기자
<박준호 벤처유통부 기자>

'총수 없는 대기업'이 된 쿠팡 논란이 뜨겁다. 쿠팡 창업자 김범석 의장은 미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동일인(총수) 지정을 피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김 의장이 규제의 실효성이 없는 외국인이며, 쿠팡 역시 외국계 기업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시민단체 중심으로 반발도 만만치 않다. 국내 기업 역차별과 외국인 특혜 논란을 넘어 쿠팡의 국적 논란으로 비화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혹자는 외국 기업 쿠팡이 한국 기업 탈을 쓰고 특혜를 누린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쿠팡의 국적은 어디일까. 창업자가 미국인이고 지배 구조 최상단에 위치한 쿠팡Inc가 미국 법인이라는 점에서 미국 회사라고 보는 게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기업과 자본의 국적을 따지는 건 사실상 무의미하다. 쿠팡은 한국 토양에서 성장한 회사이고 한국 노동자들의 일터이며, 서비스를 누리는 주체도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쿠팡 정체성 논란은 영화 '미나리'와 똑 닮았다. '미나리' 역시 미국 자본과 미국 제작사, 미국인 감독이 만든 분명히 미국 영화다. 쿠팡 최대 투자사가 소프트뱅크인 것처럼 '미나리' 역시 브래드 피트가 이끄는 미국 제작사 플랜B가 투자, 제작했다. 정이삭 감독도 김 의장과 마찬가지로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렇다고 '미나리'가 일군 성과가 폄하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미나리'의 성공에 가슴 벅찬 감동을 느낀다. 한국 정서를 담았고, 한국인 배우가 열연하고, 한국어 대사가 흐르기 때문이다.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새로운 역사를 쓴 배우 윤여정의 성과 역시 한국 영화사의 금자탑이다.

국내에 본거지를 두고 성장한 쿠팡도 한국 스타트업 성공 사례로 봐야 한다. 한국 e커머스 저력을 글로벌 시장에 알렸다는 점에서 쌓아 온 성취를 깎아 내릴 이유는 없다. 쿠팡의 행보를 색안경 끼고 보기보단 앞만 보고 달려온 쿠팡도 이제는 옆을 바라보는지 지켜보면 될 일이다.

뉴스레터 '스타트업'이 온라인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스타트업 구성원 가운데 가장 많은 36.6%가 쿠팡 국적에 대해 “기업엔 국적이 없다”고 답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해묵은 국적 논란이 아니라 쿠폰을 팔던 미생의 스타트업이 불과 10년 만에 재계 60위 대기업 반열에 오를 수 있게 된 놀라운 성장 스토리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