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문턱 높은 공공 의료데이터...보험사 "헬스케어 사업 차질"

금융당국 지원·법적 기반 무색
IRB서 두 차례 취소 '장기 계류'
의료계 '영리목적' 거부감도 작용
업계, 최근 세 번째 요청서 제출

[단독]문턱 높은 공공 의료데이터...보험사 "헬스케어 사업 차질"

보험회사가 공공 의료데이터를 활용해 헬스케어 등 신사업에 진출하려던 시도가 좌초 위기에 처했다.

금융 당국까지 나서서 보험업권의 공공 의료데이터 활용 지원 사격에 나섰지만 생명윤리위원회(IRB)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장기간 계류 신세가 됐다.

데이터 3법, 공공 의료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 법적·제도적 기반이 마련됐지만 보험사는 여전히 배제되고 있어 '초고령사회'를 앞둔 국내 헬스케어 산업 고도화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교보생명, 삼성화재, 현대해상, KB손해보험 등 생·손해보험사 10개사는 최근 업계 공동으로 IRB에 세 번째 공공 의료데이터 활용 관련 '연구계획서 및 심의면제 요청서'를 제출했다.

IRB는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인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이 운영하는 위원회로, 생명윤리법 11조에 따라 사회·윤리적 타당성 평가 경험과 지식을 갖춘 해당 분야 및 의료전문가 등으로 구성됐다.

이보다 앞서 보험사는 두 차례나 IRB에 공공 의료데이터 활용 관련 연구계획서 등을 제출했지만 취소됐다. 우선 지난 3월 IRB를 운영하는 국가생명윤리정책원과 보험협회가 사전 협의를 진행, 가명 처리된 환자데이터세트의 경우 심의 면제 대상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IRB가 심의하는 과정에서 입장을 번복, 심의 면제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취소 처리했다.

이어 4월 금융 당국이 나서서 보험협회, IRB 등과 협의해 연구계획서 관련 신청 시 보험사에 공동컨설팅을 지원하고 정규심의가 아닌 신속심의 처리로 결론 냈다. 신속심의의 경우 정규심의보다 절차 및 시간이 간소화하다는 특징이 있다. IRB 주관 연구계획서 작성 등 공동컨설팅을 거쳐 보험사가 두 번째 연구계획서를 제출했지만 내용 수정 등으로 취소 처리 및 재신청 요구를 받았다.

보험사 고위 관계자는 “법적·제도적으로 보험사 공공 의료데이터 사용이 가능하지만 여전히 데이터 접근에 제한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최근 IRB의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 계속된 추가 보완 요구는 우리로선 의도적인 시간 지연 행위라는 의심을 버릴 수 없다”라고 토로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은 지난 2013년에 제정된 '공공데이터의 제공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보험사와 보험개발원에 비식별 처리된 환자데이터세트를 제공했다. 그러나 2017년 국정감사에서 보험사가 영리 목적으로 의료데이터를 사용하는 문제가 지적되면서 중단됐다.

지난해 1월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정보통신망법 등 데이터 3법이 개정돼 공공 의료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 뒤이어 공공 의료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 금융 당국의 유권해석 등이 추가됐다. 그러나 실제 데이터는 제공되지 않고 있다.

이는 의료계가 연구 목적에서 벗어나 보험사 등이 영리 목적으로 공공 의료데이터를 활용하는 부분에 거부감을 느낀 데 따른 것이다. 실제 의료계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등도 특정 산업이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며 사실상 보험사에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보험사는 헬스케어 산업 육성을 위해 공공 의료데이터 활용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의료데이터의 하나인 환자데이터세트를 활용하면 성별이나 나이 등 기본정보에 진료내역, 처방내역 등 치료 내용을 살펴볼 수 있어 이를 활용한 다양한 헬스케어 상품과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는 게 반대의 이유다. 실제 해외에서는 이 같은 공공 의료데이터를 활용한 다양한 헬스케어 상품과 서비스가 나와 있다.

보험사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방대한 의료 데이터를 구축했지만 보험 및 헬스케어 산업이 이를 활용하지 못해 과거의 묵은 데이터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묵은 데이터 활용은 국민의 인구구조, 생활습관 변화는 물론 코로나19와 같은 새로운 질환 출현 등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위험에 노출되는 문제를 야기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개인정보는 보호돼야 함이 마땅하지만 익명화된 의료 정보의 활용도 막힌 상황에서 산업 발전이 정체되고 국민이 양질의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상황은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보험업계 주장에 복지부는 의도적 시간 지연 등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IRB를 통해 보험사와 공공 의료데이터 협의가 상당 부분 지체된 사실을 파악하고 있다”면서 “의도적 시간 지연은 사실이 아니며, 보험사들이 연구계획서 등을 처리하는 경험이 부족해 관련 내용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공 의료데이터 활용 협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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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호기자 yu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