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게임을 할 수 있는 곳 '넥슨컴퓨터박물관'

'네포지토리 베타' 전시회 미출시작 모아
흩어진 500GB 자료 일일이 추려내 시각화
페리아 연대기 등 직간접 체험 공간 구축
美 스탠퍼드 도서관 '역사 가치'로 주목

넥슨컴퓨터박물관에서는 3.5인치 디스켓을 넣으면 출시되지 않은 게임의 기획서, 원화 등 개발 기록과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넥슨컴퓨터박물관에서는 3.5인치 디스켓을 넣으면 출시되지 않은 게임의 기획서, 원화 등 개발 기록과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아시아 최초 컴퓨터박물관 '넥슨컴퓨터박물관'에 가면 시장에 출시되지 않은 게임을 할 수 있다. 테스트용 게임도 아니고 투자를 위한 버전도 아니다. 말 그대로 개발되다가 중단된 상태다. 출시에 실패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일반 플랫폼에서는 볼일이 없는 게임이다.

이들 게임 체험공간 옆에는 시각적 요소를 구성하는 게임 아트워크를 비롯해 실제 개발에 사용된 기획 문서, 테스트 영상 등이 전시돼 있다. 관람객은 다양한 방식으로 살펴보면서 개발 과정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페리아 연대기' '드래곤 하운드'처럼 게임명까지 부여받았다가 여러 이유로 사장된 게임도 있다.

업계는 출시하지 못 한 게임을 '흑역사'로 취급한다. 10년 가까이 공을 들이고도 미출시작이라는 이유만으로 외면받는다. 그래서 감추고 묻어두는 것이 업계 관행이다.넥슨컴퓨터박물관은 다르다. 세상에 선보이진 못했지만 하나의 게임을 만들기 위한 과정에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미완의 게임 개발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신작을 출시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 시도, 열정 등이 눈에 보인다. 목차만 수십 페이지에 이르는 기획서는 대한민국 게임역사의 또 다른 기록이다. 유산으로서 기억되기 충분하다.

굳이 출시되지도 못한 게임을 기록하고 공개하는 이 전시회 이름은 '네포지토리 베타(β)'다. 국내 온라인 게임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고자 하는 넥슨 아카이빙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당시 직원 메일함 내용을 그대로 뽑아와 그 때 무슨 일이있었고 어떻게 판단하고 대응했는지 볼 수 있게 기록, 전시했다.
<당시 직원 메일함 내용을 그대로 뽑아와 그 때 무슨 일이있었고 어떻게 판단하고 대응했는지 볼 수 있게 기록, 전시했다.>

아카이빙은 지속 보존할 가치를 가진 디지털 자료를 관리해 이후 이용을 보장하는 활동을 말한다. 소장품을 취득하고 관리하는 프로세스를 데이터화한다.

디지털 콘텐츠 아카이빙은 어려운 일이다. 세계적으로 사례가 거의 없다. 미출시 게임을 아카이빙하고 시각화하는 경우는 참고할 전례가 없다. 덕분에 넥슨컴퓨터박물관은 소장품 취득의 방법론, 정책 등을 일일이 만들었다.

박물관은 전시회를 위해 미출시 게임 데이터를 모았다. 파편화돼 흩어진 자료를 보안문제를 이유로 박물관이 있는 제주도까지 인편으로 날랐다. 분류되지도 않은 500GB 자료를 일일이 추려내 시각화하고 체험할 수 있게 했다. 추후 확장성을 고려해 이동할 수 있는 키오스크형으로 제작했다.

아카이빙을 통한 이어짐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새로운 단초를 제공한다. 초기 개인용 컴퓨터 재미를 발견했던 사람들이 현재 IT 업계를 이끌고 있는 것처럼, 사진의 게임잡지가 날 게임기자로 이끌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카이빙을 통한 이어짐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새로운 단초를 제공한다. 초기 개인용 컴퓨터 재미를 발견했던 사람들이 현재 IT 업계를 이끌고 있는 것처럼, 사진의 게임잡지가 날 게임기자로 이끌었던 것처럼 말이다.>

온라인 게임의 역사 가치를 적극적이고 면밀하게 보존하고자 하는 시도다. 해외에서도 주목한다. 미국 스트롱뮤지엄이 전시 레퍼런스로 삼고, 실리콘 밸리에 게임 아카이빙 공간을 오픈할 스탠포드 도서관도 참고하겠다고 밝혔다.

넥슨컴퓨터박물관 내부 모습
<넥슨컴퓨터박물관 내부 모습>

최윤아 넥슨컴퓨터박물관장은 “전시를 통해 집단 창작 과정이 잘 소개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사례를 늘리고 성공한 게임도 아카이빙하면서 넥슨뿐 아니라 다양한 게임회사와 같이 전시하는 등 온라인 게임에 관한 보존 연구나 전시로 확대겠다”고 말했다.

넥슨컴퓨터박물관은 단순 관람에서 벗어나 개인화된 관람 경험을 제공할 계획이다. 온라인으로 박물관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를 확인한 뒤 오프라인에서 제대로된 경험을 할 수 있는 고객 맞춤형 공간을 만든다. 전시를 보면서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전시 자체를 온라인 게임화 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넥슨컴퓨터박물관에서는 넥슨이 처음으로 아카이빙을 시도했던 바람의 나라 복원 프로젝트를 보고 체험할 수 있다.
<넥슨컴퓨터박물관에서는 넥슨이 처음으로 아카이빙을 시도했던 바람의 나라 복원 프로젝트를 보고 체험할 수 있다.>

제주=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