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기의 디지털경제]디지털 흔적의 무게

민원기 한국뉴욕주립대 총장
민원기 한국뉴욕주립대 총장

국민가수 이선희씨의 노래 중에 '가물거리는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이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가 있다. 이선희씨 노래의 가사처럼 인간의 기억은 불완전해서 몇 달 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질문을 받으면 기억을 되살리기가 쉽지 않다. 몇 년 전의 일들로 넘어가면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면 기억의 단초를 찾기가 불가능하고, 만약 10년 전의 있었던 일을 누가 묻는다면 기억만으로는 정확한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10년 전부터 소셜미디어나 구글 드라이브와 같은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면 소셜미디어의 10년 전 기록이나 구글 드라이브에 보관된 자료를 통해 10년 전 일의 단초를 찾을 수 있고, 이를 통해 10년 전에 있었던 일의 확인도 가능할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컴퓨터 저장 공간의 확대를 통해 디지털 기술은 인간을 망각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사실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소셜미디어와 클라우드에 남긴 글, 사진, 동영상 외에도 스마트폰, 자동차, 신용카드 등을 통해 우리의 위치정보, 검색정보, 쇼핑정보, 운동정보, 심지어는 심박수와 같은 신체정보가 디지털 공간에 기록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무인점포의 확장, 치안 유지 등을 위해 빠른 속도로 증가되고 있는 CCTV는 물리적 세상에서 우리 삶의 모습을 디지털 공간에 저장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에 거주하는 시민은 하루 평균 83.1회 CCTV에 노출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는 온라인, 오프라인 상의 모든 행동이 디지털 공간에 기록되는 라이프로깅(lifelogging)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라이프로깅을 통해 오랜 기간에 걸쳐 남겨진 개인의 디지털 기록은 디지털 흔적(Digital footprint)으로 디지털 공간에 남게 된다. 디지털 흔적은 개인 관련 기사, 본인의 소셜미디어 기록, 타인이 공유한 본인의 정보 등 대중에 노출된 디지털 기록과 검색기록, 쇼핑기록, CCTV기록 등 대중에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관리자, 운영자가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는 기록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디지털 흔적은 우리의 삶에서 다양한 형태로 활용이 되는데 대표적으로 범죄사건 수사에 중요한 단서로 활용되어 사건이 발생하면 검찰, 경찰이 가장 먼저 확보하는 것이 피의자의 스마트폰과 이동선상의 CCTV 기록이다. 더불어 신입사원의 채용시에도 입사지원자의 소셜미디어를 검색해서 입사지원서에 적혀 있지 않는 성향과 성격을 파악하기도 한다.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의 경우 본인과 더불어 가족의 소셜미디어 기록을 확인해서 과거의 발언이나 행동의 책임을 묻는 것도 이제는 보편화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디지털 흔적은 우리로 하여금 과거의 잊고 싶은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드는 디지털 족쇄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몸캠'과 같은 사례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디지털 흔적 때문에 피해를 본 대표적 사례이다. 이 외에도 본인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이나 사진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례들이 계속 증대되고 있는 실정으로 디지털 흔적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보호가 요청되고 있다.

노출되지 않은 디지털 정보의 불법적인 이용에 대해서는 개인정보보호법을 통해 상대적으로 법적 보호 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지만, 노출된 디지털 기록에 대해서는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와 '알 권리(Right to know)' 사이의 법적 대립으로 피해 발생 시 법을 통한 권리 보호에 어려움이 있다. 더불어 문제가 발생해서 법적, 행정적 절차를 밟는 시점에는 개인의 피해가 회복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부는 국민들, 특히 소셜미디어 사용이 일반화된 청소년 계층에 대해 학교 교과 과정 등을 통해 디지털 흔적이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충분히 홍보, 교육해서 본인이 공유한 정보를 통해 본인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최소화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민원기 한국뉴욕주립대 총장 wonki.min@suny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