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과학향기]질병 진단하고 식품 신선도 판별하는 전자 코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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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뛰어난 냄새 탐지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그 사람 개코야”라는 말을 한다. 실제로 후각 능력은 후각 세포 숫자에 비례하는데 개의 후각 세포 수는 약 2억2000만개로 사람의 후각 세포 500만개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다. 게다가 건강한 개들의 코는 항상 축축하게 젖어 있는데 이는 공기 속 냄새 분자들을 쉽게 달라붙게 하고 용해시켜 후각 능력을 향상시킨다. 개는 이런 후각 능력 덕분에 실종자를 수색하고 마약과 폭발물을 탐지하는 등 여러 가지 특수한 일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후각 능력을 공학적으로 재현하면 어떨까.

◇냄새로 질병을 진단한다

이미 과학자들은 사람이 냄새를 인식하는 과정을 공학적으로 재현해 어떤 냄새의 패턴을 인식하고, 그 물질의 성분을 분석하는 기술을 연구해왔다. 이른바 '전자 코'라 부르는 이 기술은 1987년에 처음 등장했다. 전자 코는 주로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을 측정하고 분석하는 데 사용하는데 오늘날에는 그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 이유는 기술 발전으로 냄새를 감지하는 센서 감도가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고, 인공지능(AI)과 딥러닝을 기반으로 데이터를 분석하는 능력도 크게 올라갔기 때문이다. 그럼 전자 코는 현재 어떤 단계에 와 있을까.

최근에는 전자 코를 이용해 질병을 진단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가장 큰 관심을 모으는 것은 전자 코를 이용한 암 진단이다. 최근 미국 임상종양학회에서는 전자 코를 이용해 혈액 샘플에서 췌장암 및 난소암 세포를 무려 95% 정확도로 구별해 낸 연구가 발표됐다. 모든 세포가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방출하는데 건강한 세포와 암세포의 휘발성 유기화합물 조성이 달라 냄새에 아주 미세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 물론 인간 코로는 절대로 구별해낼 수 없다.

펜실베이니아 의과대학 연구진들은 먼저 난소암 환자와 건강한 사람의 혈장 샘플을 분석해 난소암 환자의 휘발성 유기화합물 특징을 알아낸 뒤 이를 감지하는 나노바이오센서, 즉 전자 코를 만들었다. 이 전자 코가 각각 난소암 환자, 난소암이 없는 대조군, 췌장암 환자, 췌장암이 없는 대조군 혈액 패턴을 냄새로 구별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전자 코는 20분 이내에 난소암 환자의 경우 95% 정확도로, 췌장암 환자는 90% 정확도로 냄새를 통해 그들이 건강한 사람 혈액 패턴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숨결로 폐암을 진단하는 전자 코 연구성과가 발표됐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진단치료기연구실 연구팀은 분당서울대병원과 함께 사람의 날숨을 맡아 폐암세포 배출물질을 감지하는 전자 코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전자 코 시스템은 날숨 샘플링 장치, 금속산화물 화학 센서 모듈, 데이터 신호 처리부로 구성돼 있다. 연구진은 실제 폐암 환자 37명과 건강한 사람 48명 날숨을 채취해 200회 정도 실험한 결과 진단 정확도는 약 75% 수준이었다. 이처럼 전자 코는 더욱 정교해지며 난소암, 췌장암, 폐암을 비롯해 최근에는 코로나19 같은 감염병까지 진단하는 데 응용되고 있다.

날숨을 통해 폐암을 진단하는 전자 코 모습.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제공)
<날숨을 통해 폐암을 진단하는 전자 코 모습.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제공)>

◇식품 신선도를 감별하는 냄새 맡는 칩

전자 코의 응용 분야는 질병뿐만이 아니다. 부산대 나노과학기술대학 나노에너지공학과 오진우 교수 연구팀과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한동욱 교수 연구팀은 냄새로 과일 신선도를 판별하는 휴대용 전자 코를 내놓았다. 연구팀은 기존 후각 수용체 대신 유전공학을 기반으로 친환경 바이오 물질(M13 박테리오파지)을 사용했다. 이 전자 코는 복숭아가 시간이 지나면서 신선도가 떨어지는 것을 냄새 차이로 구별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전자 코가 상용화된다면 과일 신선도뿐만 아니라 유해물질 검출, 포도주나 커피 품질 측정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이에 전자 코를 더 쉽게 구현하고 마침내는 양산할 수 있도록 냄새 맡는 반도체칩을 만드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 인텔은 코넬대 신경 생리학자들과 인간이 냄새를 맡을 때 뇌 신경망에서 이뤄지는 과정을 수학적 알고리듬으로 바꿔 컴퓨터칩에 적용하는 것을 테스트하고 있다. 연구팀은 이 칩에 '로이히'(Loihi)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텔이 개발한 냄새 맡는 반도체칩 로이히. (출처: 인텔)
<인텔이 개발한 냄새 맡는 반도체칩 로이히. (출처: 인텔)>

연구팀은 72개 화학 감지 센서들을 이용해 풍동 내에 순환하는 10가지 기체 상태의 냄새 데이터 집합을 수집했다. 감지 센서는 각각 냄새에 대한 반응을 로이히에 전송해 로이히의 회로가 후각에 기초한 두뇌 회로를 모방하도록 했다. 로이히는 아세톤, 암모니아, 메탄 등 10가지 냄새에 대한 신경 표현을 습득했고, 간섭을 강하게 받는 상황 속에서도 냄새를 식별할 수 있었다. 이들의 연구는 국제학술지인 '네이처 머신 인텔리전스'에도 게재됐다.

앞으로 이 칩이 상용화된다면 로이히 칩을 장착한 로봇들이 환경 유해물질 탐지와 감시, 공장 내 품질 관리, 의학 진단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미래가 빨리 보고 싶다.

글:정원호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