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72>우리는 왜 지평을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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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최고경영자(CEO)가 취임했다고 상상해 보자. 그는 대개 자신의 경영 비전을 설파하고, 여러 부서는 이것을 반영하려 든다. 그런데 결과물을 내놓고 보니 뭔가 허전하다. 분명 새것인데 보면 볼수록 예전 것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지나가듯 한마디한다. 지평선 너머를 보라고. 먼 바다로 나간들 목적한 지평이 같다면 그 여정을 새로운 모험이라 부를 수 있겠냐고.

혁신을 논하다 보면 귀결은 대개 둘 가운데 하나가 된다. 하나는 상상력이고 다른 하나는 이 상상을 조직화하는 것이다. 상상이 어렵다고 하지만 사실 난망한 것은 후자다. 생각해 보라. 온갖 상상력을 자극해서 나온 그림을 목표에 담는 게 쉬울까.

그러니 네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기업 전체를 통합하고 아우르는 광각 시야다. 흔히 홀리스틱이라고 일컫는 것이 이것이다. 둘째는 기업에 부과된 기술적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요즘으로 따지면 인공지능(AI)이 그런 예다. 셋째는 제각각 기업 상황에 맞는 해법이다. 넷째는 상상을 표현하기 위한 상상력이다.

거기다 가능하면 강요하는 대신 생각을 이끌어 가야 한다. 1980년에 출간된 한 경영서의 표현을 빌리면 이것은 “자기주장을 발길질하듯 소리를 지르며 독자를 끌고 가는 대신 부드럽게 소매를 잡고 그의 결론이 보일 만한 가장 합리적인 장소로 걸어가는 것”이다.

물론 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흔히 반문한다. 여기 추천할 만한 단편 하나가 있다. 피터 드러커의 1988년작 '새로운 조직의 도래'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여기서 드러커는 20년 이후 기업 조직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드러커는 이것은 종래 제조기업보다 훨씬 수평적이고 납작하다고 말한다. 중간관리조직은 얇아진다. 본사 조직은 경영일반을 구현하되 정작 실행은 전문가 중심의 프로젝트팀이나 목적 조직이 수행한다. 이들 전문가 조직은 자율 작동한다. 이것은 독일식 전문 조직인 '그루퍼(gruppe)'를 닮았을 것이라 했다. 그리고 그는 이런 조직을 정보기반조직이라고 명명한다.

여전히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드러커의 책을 읽었지만 그가 남긴 건 조언이되 답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 기억이 어렴풋할 때쯤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해답을 찾게 된다. 2018년 봄에 나온 한 글로벌 금융기업의 사례는 드러커의 상상을 사진 찍듯 보여 준다.

종래의 사업 부서는 그대로 뒀다. 그 대신 해묵은 문제와 신속 혁신을 위해 목적 조직을 만든다. 고객 요구를 충족시키는 업무를 맡은 자율성 강한 조직이다. 규모는 채 10명을 넘지 않는다. 목적이 충족되면 해체하거나 새로운 구성원, 새 목표로 재조직한다. 이것으로 다가 아니다. 전문 분야 조직을 만든다. 예를 들어 사용자 경험 담당자나 데이터 분석 담당자들끼리 모인다. 이들은 여러 부서에 뿔뿔이 흩어진 채로 속해 있지만 이렇게 모여서 지식을 공유한다.

드러커의 표현을 빌리면 일반 경영조직에 태스크포스(TF)라 이르는 목적 조직과 그루퍼로 예로든 전문가 조직을 겸해 둔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는 비로소 드러커를 이해하게 된다.

물론 그의 모든 예언이 그가 말한 20년 만에 실현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드러커가 손을 들어 가리켜 보인 새 지평이 없었다면 우리는 비록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목격한 사실을 담을 생각의 틀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어쩌면 새 지평을 보는 안목이 없다면 혁신도 결국 이런저런 시도와 성공담의 묶음에 불과할지 모를 노릇 아닐까.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72>우리는 왜 지평을 보는가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