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반도체 장비 사재기...대중 규제에도 미국산 장비 구매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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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추가 규제에 대비 '구매 급증'
'반도체 굴기' 지속 추진 의지 반영
中 싹쓸이 움직임에 한국도 영향
장비기업, 中 수출 기회 열렸지만
반도체 제조사는 구매 어려워져

중국이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대거 사들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도 반도체 장비 구매가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압박이 더 강화되기 전에 반도체 장비를 한 대라도 더 사들이려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반도체 굴기에 대한 중국의 의지가 엿보이는 동시에 중국의 반도체 장비 '싹쓸이'로 가뜩이나 구하기 어려운 장비 수급 상황이 악화할지 우려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12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화상회의에서 반도체 웨이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인텔·GM 등 반도체·자동차산업 관련 19개 글로벌 기업이 화상회의에 참석했다. <AP=연합>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12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화상회의에서 반도체 웨이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인텔·GM 등 반도체·자동차산업 관련 19개 글로벌 기업이 화상회의에 참석했다. >

18일 전자신문이 '미국 인구조사국 국제무역데이터'(USA Trade Online)를 분석한 결과 올해 1~5월 미국의 대중 반도체 장비(HS코드 848620) 수출액이 총 21억9600만달러(약 2조5000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수출액 14억1200만달러보다 55% 급증한 수치다.

미국이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와중에 수출액은 외려 늘었다. 분기별로도 미국이 중국에 판매한 반도체 장비 금액은 증가했다. 올 1분기 미국의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액은 12억7100만달러로 전 분기(10억6300만달러) 대비 약 20% 늘었다.

미국은 세계적 반도체 장비사를 두고 있다.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 램리서치, KLA를 대표로 들 수 있다. 이들 기업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40%(2019년 기준)를 넘는다. AM·램리서치·KLA는 모두 식각, 증착, 검사 등 반도체 제조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장비를 만들고 있다.

중국의 미국 장비 구매가 늘어난 건 의외다. 미국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반도체 수출 규제를 강화해 왔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미국은 화웨이, SMIC, 하이실리콘, 푸젠진화 등 중국 300여개 업체를 '수출제한 대상목록(블랙리스트)'에 올려 거래를 제한했다.

그럼에도 미국산 장비 구매가 늘어난 건 대중 제재 강화를 대비하고, 반도체 굴기를 지속 추진하려는 의지가 복합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트럼프 정부에 이어 새롭게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대중국 견제가 지속될 조짐으로 나타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강조했다. 중국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반도체 장비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으로, 살 수 있을 때 사서 미국의 추가 견제에 대비해야 한다는 전략이 반영된 것으로 추측된다.

미국의 추가 제재 가능성은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산하 인공지능(AI)위원회 보고서에서도 읽을 수 있다. AI위원회는 지난 3월 첨단 노광기술인 극자외선(EUV)뿐만 아니라 불화아르곤(ArF) 장비까지 중국 수출을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연방의회에 제출했다. 지금은 10나노급 이하 초미세 공정에 주로 활용하는 반도체 장비만 수출 제재하고 있지만 언제든지 10나노 이상 또는 구공정용 반도체 장비도 수출 금지 품목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 반도체. <전자신문 DB>
<중국 반도체. <전자신문 DB>>

국내 한 반도체 장비업체 대표는 “현재는 초미세 공정용 첨단 반도체 장비만 수출을 금지하기 때문에 (중국이) 다른 장비는 충분히 미국에서 직접 살 수 있다”면서 “미국 제재에 직격탄을 맞은 회사 이외의 반도체 제조사들이 수입 가능한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마구 사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반도체 장비 사재기는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직간접 영향을 미친다. 우선 국내 반도체 장비 업계에는 긍정적인 요소다. 중국의 반도체 장비 구매 지속은 곧 국내 기업에 수출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 푸젠진화반도체, 세이치반도체, 실리드 등 중국 반도체 회사들이 검사 장비 중심으로 국산 장비를 다수 주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고 장비는 전년 대비 주문량이 50%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국내 반도체 제조사에는 달갑지 않은 대목이다. 중국의 반도체 장비 구매량이 많아질수록 장비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반도체 장비 납품 기간이 전례 없이 길어진 가운데 중국의 사재기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장비 납품 기간이 길어지고 수급 불균형이 우려돼 내년 투자분 일부를 올 하반기에 조기 투자하고 있다. 또 중국의 반도체 투자는 국내 반도체 업계에 잠재적 경쟁자의 부상을 뜻해 부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른 반도체 장비업체 대표는 “중국의 구매 확대로 다른 반도체 제조사가 장비를 구매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특히 미국산 반도체 수요가 많은 우리나라 반도체 제조사 입장에서는 상당히 당혹스러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국은 반도체 장비 시장의 큰손이 됐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반도체 장비 구매액은 전년 대비 39% 증가한 187억2000만달러에 달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반도체 장비를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미국인구조사국 국제무역데이터(USA Trade Online)



<<미국의 대중 반도체 장비(HS코드 848620) 수출액 추이> (단위 : 백만달러)>


<미국의 대중 반도체 장비(HS코드 848620) 수출액 추이> (단위 : 백만달러)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