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 <12>박 대통령, '기술연구소 설립 타당성' 지시

1959년 7월 14일 원자로 연구로 1호기 기공식이 경기도 양주군 원자력연구소 원자로 건물 주 구조물 앞에서 열렸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1959년 7월 14일 원자로 연구로 1호기 기공식이 경기도 양주군 원자력연구소 원자로 건물 주 구조물 앞에서 열렸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1964년 9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이날 장기영 경제기획원 장관에게 “과학기술 연구기관 개편 관련 타당성 여부를 검토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지시는 구체적이었다. 국립공업연구소(현 국가기술표준원)·원자력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금속연료종합연구소(1971년 KIST와 합병)를 통합 개편해 종합 과학기술 연구소로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분석해서 그 타당성 여부를 보고하라는 지시였다.

과학기술 연구기관 개편을 추진하다 무산한 일로 의기소침해 있던 전상근 기술관리국장(현 삼전복지재단 이사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백만 대군을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전상근 당시 국장의 회고. “마치 고립무원 처지에서 백만 대군을 얻는 기분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과학기술연구소 통합에 관심을 표명한 일이 제게는 큰 힘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는 이보다 앞선 9월 6일 경제과학심의회의(이하 경과심)에서 논의해 정부에 촉구한 내용과 거의 같았다. 경과심은 과학기술 진흥의 비약적인 발전을 위한 방안으로 원자력연구소·국립공업연구소·금속연료종합연구소를 예산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통합해 운영하고, 가능하면 특수법인체로 하는 게 좋겠다는 견해를 정부에 촉구한 바 있다. 경과심 의장인 박정희 대통령이 경과심 회의 결과를 보고받고 경제기획원에 종합과학연구소의 신설 타당성 검토를 지시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전상근 국장은 이응선 기술조사과장과 개편안을 놓고 다양한 방안을 검토했다. 전상근 삼전복지재단 이사장이 전한 당시 이응선 경제기획원 기술조사과장과의 대화 내용. “이 과장, 연구소 설립안을 마련하는 일은 좋은데 3개 연구기관을 통합한다는 건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요.”(전 국장) “글쎄요. 연구기관마다 설립 목적과 역할이 다른데 이를 하나로 통합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요”(이 과장) “(박정희)대통령이 새로운 연구소 설립에 관심을 갖고 연구기관 통합을 검토하라고 지시하셨는데 통합안이 아닌 다른 대안(代案)이 있는지 찾아봅시다.”(전 국장)

1년여 전 전상근 국장은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방안으로 국립공업연구소를 확대 개편해 과학기술 진흥과 산업기술을 연구하는 중추기관으로서 새로운 종합 과학기술 연구소 설립을 추진했지만 해당 부처와 연구소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전상근 국장은 지난날의 경험과 교훈을 바탕으로 주도면밀하게 대안을 마련했다. 3개 연구기관을 종합연구소로 통합하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3개 연구기관은 우선 설립 시기, 목적, 역할, 소속이 달랐다.

3개 연구기관 가운데 국립공업연구소는 국내 연구소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구한말인 1883년(고종 20년) 8월 7일 국내 유일한 화폐 주조와 금속 광물 분석·가공·제련 업무를 담당하는 분석시험소로 출범했다. 그 후 몇 차례 개칭을 거쳐 1961년 10월 국립공업연구소로 명칭을 변경했다. 조직도 종전 7개 과를 2부 7과로 확대했다. 이어 국립공업표준시험소-국립공업시험원-국립공업기술원-국립기술품질원-기술표준을 거쳐 2013년 국가기술표준원으로 명칭을 바꿨다.

한국 최초의 원자력 종합연구기관인 원자력연구소는 1959년 2월 3일 출범했다. 초대 소장으로 물리학자인 박철재 박사가 취임했다. 한국은 이에 앞서 1956년 2월 미국과 원자력의 비군사적 이용에 관한 원자력 협정을 체결, 원자력 기술 도입의 물꼬를 텄다. 이승만 대통령이 원자력 도입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정부는 1958년 원자력법을 제정, 공포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9년 7월 연구용 원자로 설치공사 기공식에 참석해 관계자들을 격려했고, 건설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원자력연구소는 1980년 12월 한국에너지연구소로 개칭됐다가 1989년 12월 다시 한국원자력연구소로 변경됐다. 2007년 3월에는 지금의 한국원자력연구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금속연료종합연구소는 최형섭 박사가 산파역을 맡아 1961년 9월 26일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1962년 1월 재단법인체로 출범했다. 총회에서 대한중석, 대한석탄공사, 대한철광, 대한광업제련공사 등 국영기업 4개사가 연구소를 공동 활용하기로 했다. 연구비도 공동 출연했다. 연구소 초대 이사장에 장지량 대한중석 사장, 초대 소장은 오준석 박사가 각각 취임했다.

금속연료종합연구소 설립을 주도한 최형섭 박사는 당시 원자력연구소 소장이었다. 최형섭 박사는 낮에 원자력연구소에서 일하고 밤에는 금속연료연구소에서 대학원 학사들과 광석 처리 등에 관한 연구에 전념했다. 최형섭 박사는 회고록(불이 꺼지지 않은 연구소)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당시 국내 관영 연구소는 재정이나 행정에 융통성이 없고 연구직 직급이나 급여 제도가 불합리해 인재를 확보할 수 없었다. 국내 연구소의 문제점을 잘 아는 나는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과 연결해 자율적인 연구를 보장하는 재단법인인 독립 연구기관을 설립해서 우리나라 연구기관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이런 내 구상에 장지량 대한중석 사장이 적극 지지하고 협력해 연구소를 설립한 것이다.”

금속연료종합연구소는 출발부터 기존 연구소와 다른 세 가지 운영 방침을 정했다. 방침은 △연구소는 순수한 민간 연구기관으로서 효율적인 운영체제를 확립하고 선진국 연구소 운영 방식을 국내에 처음 도입해 최소 비용으로 최대 성과를 거두는 연구개발 방식을 택한다. △연구소 처음으로 산·학·연 공동 협동의 길을 마련하고, 연구 인력 양성을 위해 연구장학생 제도를 도입한다. △현장에서 기업이 필요한 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이를 위해 수탁연구제도를 제정한다 등이다. 당시 어느 연구소에서도 시도하지 않은 파격적인 운영 방식이었다.

금속연료종합연구소는 또 최형섭 박사 제안으로 국내 처음의 연구과제 타당성 검토와 연구원 선정, 연구 결과 평가를 담당하는 연구업무심의회를 구성·운영했다. 이처럼 설립 시기와 목적, 기능이 다른 3개 연구기관의 통합을 놓고 고심을 거듭하던 기술관리국은 금속연료종합연구소를 주축으로 재단법인체인 종합과학기술연구소의 설립에 의견을 모았다. 국립공업연구소와 원자력연구소는 현 체제를 유지키로 해 부처 간 갈등 소지를 없앴다.

기술관리국은 종합과학연구소 설립의 세부 계획을 마련해 박충훈 상공부 장관과 박태준 대한중석사장 겸 금속연료종합연구소 이사장을 만나 내용을 설명하고 동의를 얻었다. 기술관리국은 또 금속연료종합연구소 창설자인 최형섭 박사를 만나 설립 방안을 설명했다. 전상근 당시 국장의 회고. “경제기획원 입장은 종합 과학연구소 소속기관은 상공부보다 국가 예산을 관장하는 경제기획원 소속으로 이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는 의견을 말씀드렸습니다. 최(형섭) 박사님도 우리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셨습니다.”

기술관리국은 부처 간 협의를 거쳐 1964년 11월 19일 '연구기관 개편에 관한 보고서'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보고서는 △결론 △기존 3개 연구기관의 통합이 불가능한 이유 △금속연료종합연구소 개편이 유리한 이유 등 3개 단락으로 구분해 작성했다.

기술관리국은 결론 부분에서 △국립공업연구소인 원자력연구소와 금속연료종합연구소를 통합하는 것은 불합리하며, 그 대신 현재 주요 국영기업체의 출연금으로 운영하는 재단법인 금속연료종합기술연구소를 모체로 민간 종합연구소로 점차 개편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민간 종합연구소에서는 전국 주요 연구기관이 수행하던 순수 연구개발 업무를 종합해 수행한다. △민간 종합연구소에는 유엔특별기금과 정부 국영기업, 민간기업으로부터 자금 보조를 받도록 한다. △민간 종합연구소는 정밀기계 보수센터, 각 연구기관의 유휴 연구시설을 한곳에 모아 설치토록 한다. △국립공업연구소는 현재와 같이 상공 행정을 뒷받침하는 시험분석 기능만을 수행하며, 상공부에 존속시킨다. △원자력연구소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개발이라는 고유 기능을 수행한다고 밝혔다.

기술관리국은 3개 연구기관 통합이 불합리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3개 연구기관의 기능과 설립 목적이 각각 다르고, 나름대로 각자 국가적으로 필요하다. △3개 연구기관의 업무가 중복됐다고 하지만 실제 연구 활동에는 중복된 일이 없고, 만일 중복되면 연구개발위원회와 같은 기능을 통해 통합 조정할 수 있다. △3개 연구기관을 통합할 경우 개편에 따른 혼란이 발생하고, 당분간 이들 기관의 기능은 정지 상태에 빠진다고 설명했다.

기술관리국은 금속재료종합연구소를 개편해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유리한 이유로 다음과 같이 네 가지를 들었다. △현재 주요 국영기업체 보조로 운영하는 연구소는 재단법인체로서 연구 분야만 확충하면 완벽한 재단법인 종합연구소가 될 수 있다. △모든 산업 분야와 연관성을 가질 수 있어 기업이 필요한 산업 생산과 직결한 연구개발을 할 수 있다. △빈약한 국내 민간 연구소를 육성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금속재료종합연구소는 대한중석, 대한석탄공사, 대한철광, 한국제련 등 국영기업체의 강력한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

경제기획원은 종합과학기술연구소 신설안을 마련해서 청와대에 보고한 후 상공부 등을 오가며 설립을 추진했다. 그러나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