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73>불편한 것으로의 익숙한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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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된 일이다. 당시 융합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붐이 불었다. 공학 분야와 학생 교류를 해보기로 했다. 시도는 얼마 가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한편으론 이 전공을, 다른 한편으론 다른 전공을 배운 후 이걸 소화해서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 내란 건 지나친 것이었다. 물론 그 시도가 없었다면 이것조차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지극히 다양한 혁신 시도가 있다. 많은 경우 실패한다. 실패로부터 얻는 것은 많다. 그러나 성공으로부터 얻을 것은 더 많을 수 있다. 그래서 실패는 길지 않아야 하고, 성공을 향한 통로여야 한다.

어떻게 해야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까. 어떤 이는 그 해법을 다양한 경험에서 찾는다. 종종 '인지적 다양성'이라 불리는 것이 이것이다.

한창 잘나가던 시절 IBM이나 디지털 이큅먼트는 자신의 일관된 기업문화를 자랑했다. 그것은 '엔지니어 컬처'라고도 불리던 생각의 균질성이었다. 이런 균질성은 제한된 문제를 쉽게 해결하고 기회 역시 쉽게 포착하게 해 준다. 더욱이 이런 능력의 성과 예측은 지극히 가능하기도 하다. 단지 문제는 그 성과 역시 예측 가능한 범위로 제약된다.

문제는 이 제한된 범위를 넘어선 곳에서는 매번 새로운 지식과 논리를 배워야 한다는 데 있다. 학자들은 이처럼 좌뇌나 우뇌의 창의성에만 의존하는 대신 전뇌를 사용하라고 좀 고상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간단히 말하면 누구도 다른 해석을 하지 못하고 동일한 결론에 신속히 도달한다면 마치 두 개의 지각이 만나는 곳에 잔뜩 쌓인 응력이 어느 날 터져 나온 그날 땅 위에 세운 모든 것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것처럼 이것이 만들 큰 충격을 당신은 차곡차곡 쌓고 있는 셈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 누군가의 얘기가 하나 있다. 직전 회사에서 대성공을 거두고 새 기업에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됐다. 그런데 회의 때마다 인사담당자가 눈에 거슬리더라는 것이다. 그는 회의 안건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 대신 자질구레한 사내 탁아소 관리, 휴가나 브레이크 타임, 편의시설 같은 사안에만 관심이 있어 보였다. 참다못해 교체할까도 고민했다. 그러나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먼저 알고 싶었다. 이른바 그의 사고방식이란 렌즈로 자신이 막 취임한 기업을 보기로 했다.

얼마 뒤 알게 된 것은 그동안 고질병인 인사 문제가 정작 그 인사담당자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들에 민감한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거기다 이런 일상사에 쏠린 관심이 문제를 예측하고 예방하기까지 했다.

이 CEO는 훗날 자신이 그 인사담당자에게서 배운 경험을 “회의 시작 전 5분 동안 기르고 있는 강아지들이며 아이들, 심지어 새로 산 자전거가 어떤지와 같은 시시껄렁한 얘기를 한다는 것만큼 더 나은 조언은 없었다”고 묘사하더라는 것이다. 물론 선택은 당신 몫이고, 그 결론은 우리 모두 모른다.

벌써 꽤 오래된 두 전공의 생각을 섞어 보자는 시도가 어떤 결과물을 낳았는지는 분명치 않다. 드러난 변화란 적다. 그러나 그 이후로 한 사람은 알아먹기 어려운 과학자와 공학도 얘기를 기꺼이 경청하게 됐고, 실험실에 파묻혀 살던 그 동료는 곧 연구실 창업을 할 모양새다. “혁신하려면 당신 자신과 다른 사람을 파트너로 삼고 처음에 한 동안을 견뎌 내라.” 누군가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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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