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75>러닝머신에 혁신을 태우다

알파벳. A에서 Z까지를 일컫는 26자 자음과 모음 체계다. 이 알파벳으로 할 만한 놀이가 하나 있다. 각 자모로 시작하는 대표적인 혁신기업은 무엇이고, 그 근거는 무엇인가란 질문은 어떤가. A라면 그 이유로 물류혁신이든 웹서비스를 대든 간에 아마존일 가능성이 짙다. 이렇게 하나씩 대다가 M에 이르면 난형난제의 상황이 잠시 이어진다. 하지만 누군가 미네소타 광공업사라고 외치는 순간 모든 건 깨끗이 정리된다. 뉴욕증시 종목코드는 MMM이다.

혁신에서 최고 난제는 무엇일까. 첫 혁신에 성공하기는 마땅한 후보자겠다. 또 뭐가 있을까. 진정 새로운 가치를 만든 혁신은 어떤가. 하지만 진정한 난제는 혁신 지속하기가 아닌가 싶다.

언뜻 보면 역설이자 모순이다. 일단 성공했다면 반복하는 게 뭔 대수일까 싶다. 하지만 첫 제품의 성공에 매몰돼 매번 이것 비슷한 것에 매달리다 실패한 사례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럼 어떻게 하면 되나. 실상 정답은 상황 따라 기업 따라 다를 테다. 이런 때 좋은 방법이 사례를 찾아 견주는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우리 모두 잘 아는 '무어의 법칙'에 숨겨져 있다. 성능증가 주기에 대한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하여튼 이 인텔 공동창업자 고든 무어의 주장이란 대략 “반도체 트랜지스터 집적도는 24개월에 2배씩 증가한다”는 것이다. 정작 한 가지 흥미로운 건 대부분이 무어의 법칙을 마치 물리학 법칙처럼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어의 법칙 그래프 (사진=인텔)
무어의 법칙 그래프 (사진=인텔)

그런데 이건 큰 오해다. 이것은 실상 경영목표에 가깝다. 증명을 위해서는 그래프 세 개를 동원하면 된다. 첫번 째 그래프는 매년 트랜지스터 집적도가 어떻게 향상됐는지를 나타낸다. 이 그래프만 보면 반도체 성능이 무어의 법칙처럼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된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잠깐만. 두 번째 그래프를 보시라. 여기에는 매년 인텔이 지출한 연구개발(R&D)비를 기록했는데 놀랍게도 이것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더 빨리 증가하는 에베레스트 모양이다.

이제 세 번째 그래프를 보자. 이것은 첫 번째와 두 번째 그래프의 조합이다. 즉 인텔이 투자할 때 늘어난 반도체 성능이다. 이건 예상외로 천천히 증가한다. 즉 인텔은 무어의 법칙을 완성하기 위해 그만큼 투자를 더 많이 했고, 그 결과 반도체 성능은 향상됐다. 무어의 법칙은 물리학이 허용했지만 인텔의 의지 없이 달성될 수는 없던 셈이다.

그럼 인텔은 이것으로부터 무엇을 얻었을까. 적어도 세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첫째 인텔은 1979년 8088 프로세서 이후 1982년 80286, 1985년 386, 1989년 486, 1993년 펜티엄, 1995년 펜티엄 프로까지 마치 러닝머신 위에선 운동선수처럼 내달린다. 둘째 신제품은 주기를 따라 나왔고, 이로써 반도체를 사용하는 모든 산업은 인텔의 혁신 속도에 보조를 맞춰 뛰었다. 그리고 셋째 1987~1997년 10년 동안 인텔은 투자자들에게 연평균 44%의 놀라운 수익을 안겼다.
기업이 자신의 목표에 시간을 집어넣는 것은 모두가 다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계획을 러닝머신 위에 올려놓는 기업은 드물다. 만일 우리가 지속된 혁신이라는 이 난제를 풀려면 자신의 혁신을 이런 러닝머신 위에 올려놓을 방법을 찾아야 할지 모른다. 1902년 미네소타 광공업사로 시작한 기업이 3M으로 불리며 오랜 기간 혁신의 아이콘으로 살아남은 비결도 이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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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