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톡' 변호사 징계 초읽기…신산업 또 발목

변협 '광고 규정' 개정안 5일 시행
3000여명 가입...전체 10% 넘어
리걸테크 진영 "기본권 침해" 비판
타다 사태 재현...전통산업 충돌 확산

'로톡' 변호사 징계 초읽기…신산업 또 발목

리걸테크 플랫폼 '로톡' 가입 변호사에 대한 징계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대한변호사협회의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 개정안이 5일 0시부터 시행된다.

신기술 기반의 새로운 사업과 기득권 전통산업이 정면충돌하며 사회적 파장을 낳은 '타다 사태'가 재현되는 양상이다. 리걸테크 진영은 변협의 개정안이 변호사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성이 다분한 처사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변협은 5일 0시부터 로톡 가입 변호사 3000여명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하기로 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국내 법률시장 진입이 예상되는 가운데 국내 전통사업자의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반발했다.

로톡은 이용자가 자신의 사건 키워드를 검색하면 관련 변호사 정보를 제공하는 온라인 기반 법률 서비스다. 로톡은 이용자에게 중개 비용을 받지 않는 대신 변호사들이 내는 광고료로 수익을 낸다. 광고료를 지급하는 변호사는 광고 영역에 노출될 기회를 얻는다. 현재 로톡에서 이뤄지는 월평균 상담 건수는 약 2만3000건에 이른다.

그러나 변협은 로톡이 비변호사의 변호사업 광고를 금지한 변호사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지난 5월 '로톡'과 같은 변호사 광고 플랫폼에 변호사가 자신을 광고할 수 없도록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을 개정했다. 5일부터 변호사가 '로톡' 등 리걸테크 플랫폼을 이용하면 지방변호사회가 시정 조치를 요구하고, 변협을 통해 징계할 수 있다. 로톡에 가입한 변호사가 3000여명으로, 전체 개업 변호사(2만4000여명) 가운데 10% 이상이 무더기 징계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현재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변협에 징계를 요청한 로톡 가입 변호사는 500여명에 이른다.

반면에 리걸테크 업계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국내 법률시장 진입이 예상되는 가운데 법률산업의 디지털 전환은 시대적 흐름이라고 주장했다.

구태언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리걸테크산업협의회장은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알파고가 판례를 분석하면 얼마나 빠르고 정확한 법률서비스가 제공될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면서 “한국어도 완벽하게 이해하고 문맥도 알아듣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과 경쟁할 K-리걸테크 기업의 싹을 자르면 안 된다”고 말했다.

벤처·스타트업 업계는 변협 등 전통 사업자가 신규 온·오프라인연계(O2O) 플랫폼의 법률시장 진입을 막아 과거 '타다 사태'가 법률시장에서 재현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로톡이 승차공유 서비스로 회원을 170만명 확보하는 등 급성장했다가 택시업계의 반발로 사업을 접었던 타다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구 협의회장은 “법률·의료·금융 데이터는 국가 주권과 관련된 만큼 국산 플랫폼의 역할이 중요한데 리걸테크 변호사를 징계하고 스타트업을 퇴출하는 것은 근시안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변협은 리걸테크 진영과 갈등의 골이 깊어진 가운데 5일 0시부터 로톡 가입 변호사에 대한 징계 절차에 들어가기로 했다.

김신 변협 수석대변인은 “알파고가 국내 법률시장에 들어오는 것은 변호사 면허제도를 없애기 전에는 불가능하다”면서 “로톡은 리걸테크라는 말로 포장하지만 변호사를 플랫폼에 종속시켜서 온라인 브로커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테크 기반의 신산업과 전통 사업자의 충돌은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조율하고 중재할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은 미미한 상황이다. 업계에선 기득권의 큰 목소리에 정부나 국회가 손을 놓고 있다며 불만이 많다.

차량공유, 원격의료, 온라인 부동산 거래 등 이미 세계시장에선 온라인 전환이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새로운 사업자도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가 세계 최고인 우리나라에서 유독 신사업이 규제에 발목 잡히는 일이 많다. 신사업은 특히 타이밍이 중요한데 우리 신산업은 갈 길을 잃고 있다.

벤처업계 고위 관계자는 “신산업과 전통산업의 충돌은 앞으로 더 많은 산업에서 반복될 수밖에 없다”면서 “기술과 세상은 변화하는데 정부나 우리 사회가 새로운 도전을 막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준희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