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31>혁신성장을 견인하기 위해 기술사업화 정책을 고도화하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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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꾸준한 증가에 힘입어 어느덧 우리나라의 연구개발(R&D) 투자 규모가 지난 2019년 89조원을 돌파함으로써 절대 규모 기준 세계 5위, 경제 규모 기준 세계 2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R&D 투자가 우리나라 경제 성장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기여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의 여지가 있다. 한 예로 R&D 생산성은 선진국에 비해 낮고, 정체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R&D의 결과는 기술사업화 과정을 통해 신제품 또는 신서비스 등으로 나타난다. 시장에 출시돼 매출이 발생함으로써 기업과 산업이 성장하게 된다. 우리나라 정부는 기술사업화를 촉진하기 위해 2000년 기술사업화촉진법 제정 이래 지속적인 재정 투자와 제도 정비를 통해 선진국 수준의 기술사업화 지원체계를 구축했다.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지난 20년 동안 형성된 기술사업화 생태계가 스스로 작동하는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물론 기술사업화에는 상당한 수준의 기술 및 시장 리스크가 내포돼 있어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그레그 스티븐스와 제임스 벌리의 기술혁신 깔때기 이론에 따르면 기업 주도의 기술사업화에서 3000개 아이디어 가운데 1개, 125개 특허 가운데 1개가 시장에서 크게 성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과 기후 위기 등으로 인한 현재의 어려운 여건에도 우리 정부는 미래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R&D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려 올해 27조400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소중한 재원을 투자하는 만큼 기술사업화 효과를 극대화, 혁신성장을 견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새로운 도전과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기술사업화 정책 범위를 국가 단위에서 지역 단위까지로 깊이를 확대해야 한다. 그동안 일곱 차례에 걸쳐 수립된 정부의 기술이전·사업화촉진계획은 국가혁신체계에 기반을 둔 것이다. 이에 따라 17개 시·도 지방자치단체의 산업발전계획과는 연계되지 않아 지역 주도의 혁신 성장으로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실정이다. 오는 2023년에 시작하는 제8차 촉진계획부터는 지역별 기술이전·사업화 촉진계획도 함께 수립되기를 기대한다.

둘째 정부가 지원하는 응용 또는 개발연구 과제의 기술사업화 성공 기준을 매출액 발생에서 임계 규모의 매출액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와 같이 성공 판정의 잣대를 강화하면 정부 입장에서는 사업화 성공률이 수치상 대폭 낮아져서 국회와 언론으로부터 더욱 거센 비판을 받게 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현행 기준으로 측정된 50%대의 기술사업화 성공률은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수치로 공통 인식한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사업화 성공 기준을 시장 기준으로 전환해야 정부 지원 과제에 참여하는 주체가 더욱 시장 눈높이에 맞춰 행동할 것이고, 이에 따라 사업화에 성공한 과제의 결실도 기업의 혁신 성장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게 된다.

셋째 기술사업화 지원정책의 무게중심을 기술 검증에서 '시장 검증'(proof of market)으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정부는 기술의 적용 가능성을 의미하는 기술성숙도를 높이려는 기술 검증에 초점을 두고 정책을 설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후속 R&D 등 기술성숙도 제고를 위한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신제품이 궁극적으로 시장에서의 론칭에 실패하면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갈 수 있다. 이러한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해 신제품의 생존 가능성을 의미하는 사업화성숙도를 높이려는 시장 검증에 더 많은 정책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돌이켜 보면 지난 20년 동안 우리나라의 기술사업화 역량은 괄목상대가 될 정도로 비약적으로 발전해 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하고 안주해서는 안 된다. 기술사업화 정책의 고도화가 위기 상황에 있는 우리나라 경제를 위기 이전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회복시키는 탄력 성장 달성에 효자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종복 학장
박종복 학장

박종복 경상국립대 상경대학 학장 jxpark@g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