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오프라인 매장, 이젠 물류 허브"…유통공룡, 변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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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청계천점에 구축된 물류 전용공간인 PP센터
<이마트 청계천점에 구축된 물류 전용공간인 PP센터>

이마트는 신도림점을 리뉴얼 오픈하면서 매장 영업면적을 300평 줄이고 그 자리에 온라인 배송 처리를 위한 PP(피킹·패킹) 센터를 세웠다. 물류공간 확보를 위해 영업면적을 줄인 것이다. 매출은 판매 면적과 비례한다는 통념을 깨는 과감한 시도였다. 결과적으로 매장 크기가 줄었음에도 점포 매출은 오히려 11.5% 뛰었다. PP센터에서 처리한 온라인 배송 판매량이 10배 이상 늘어난 덕분이다.

이마트 사례처럼 전통 유통기업이 급변하는 소비 지형 속에 생존을 모색하기 위한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코로나19는 비대면 근거리 배송 중심의 소비 패러다임 전환을 가속화했고 시장 주도권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유통으로 넘어갔다. 정보기술(IT)과 물류 발달은 소매업 본질을 입지에서 배송으로 전환시켰고, 핵심 상권 입지를 바탕으로 성장해온 대형마트의 강점은 무용지물이 됐다. 이젠 정확하고 빠른 배송 서비스가 시장 경쟁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됐다.

소비자도 변했다. 새벽배송과 퀵커머스 등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한 소비자는 생필품부터 가공, 신선식품까지 대부분 소비재를 온라인으로 구매하기 시작했다. '손가락 장보기'는 대면 판매를 중심으로 성장해온 롯데와 신세계 등 전통 유통기업에 위기이자 변화의 기회로 작용했다. 유통 대기업은 안주하는 대신 과감한 진화를 택했다. 이들 기업이 내세운 핵심 전략은 '오프라인 기반의 디지털화'다.

롯데마트 매장 바로배송 서비스
<롯데마트 매장 바로배송 서비스>

양사 모두 유형자산을 디지털 자산으로 재배치하고 전국 매장을 물류 거점으로 전환하는데 속도를 내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을 도심 물류기지로 활용할 경우 라스트마일 거리가 짧아지고 더 빠른 배송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e커머스 사업자보다 더 많은 배송 권역을 확보하고 비용 효율성 측면에서도 우위를 점한다는 발상이다.

특히 비대면 변화에 대응해 오프라인 매장의 판매 역할은 축소하고 물류 거점과 고객 체험 접점, 데이터 확보 역할에 무게를 싣고 있다. 디지털 전환에 발목을 잡았던 오프라인 매장을 오히려 새로운 생존 비법으로 삼은 것이다.

이마트는 매장 후방공간을 PP센터로 활용한다. 전국 110여개 PP센터를 통해 하루 6만건 이상의 주문을 처리한다. SSG닷컴 온라인 물류센터와 쓱배송 물량을 나눠 맡는 구조다. 최근에는 전용물류센터와 동일한 자동화 설비를 점포에 구축해 효율성도 높였다.

롯데마트도 오프라인 매장을 거점으로 2시간 바로배송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롯데마트 세미다크스토어는 매장 후방에 자동화 설비를 구축한 것으로, 오프라인 영업과 온라인 주문 대응을 동시에 할 수 있는 형태다. 다크스토어로 전환한 잠실점은 도입 한달 만에 온라인 매출이 44% 뛰었다.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롯데는 연내 다크스토어를 29개까지 늘려 롯데온을 기반으로 배송 서비스를 강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GS더프레시 직원이 온라인 주문 상품을 배송직원에게 전달하고 있다.
<GS더프레시 직원이 온라인 주문 상품을 배송직원에게 전달하고 있다.>

유통업계는 e커머스 시장의 새로운 전장으로 떠오른 퀵커머스 시장에서도 기존 점포를 활용해 사업 확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퀵커머스는 생필품과 식료품 등을 단시간 내 문 앞까지 즉시 배송하는 서비스다. 코로나 팬데믹이 만든 홈코노미 생활 패턴에 힘입어 퀵커머스 시장이 빠르게 성장했다. 배달의민족과 쿠팡 등 온라인 플랫폼이 선점한 시장에 전통 유통기업도 적극 가세하고 있다. 별도 비용을 들여 마이크로풀필먼트를 세우지 않아도 도심 곳곳에 자리잡은 매장을 활용해 물류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프라인 유통 기업에 기회가 열려있다는 평가다.

성장 가능성은 투자 확대로 이어졌다. GS리테일은 3000억원을 들여 배달앱 '요기요'를 품었다. 이미 오프라인 거점과 배송망을 갖춘 상황에서 마지막 퍼즐로 배달플랫폼 인수를 택했다. 1만6000여개 오프라인 점포 자산과 시너지를 창출해 퀵커머스 시장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청사진이다. GS리테일은 국내 퀵커머스 시장 규모가 2025년까지 5조원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

전문가들도 퀵커머스 경쟁에서 전통 유통기업의 선전을 점친다. 정연승 한국유통학회장은 “퀵커머스 경쟁에서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상품 소싱, 라스트마일 고도화에 꾸준히 투자할 수 있는 체급을 갖춘 유통업체들이 유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롯데슈퍼 친환경 전기 배송 차량
<롯데슈퍼 친환경 전기 배송 차량>

롯데와 이마트, 홈플러스는 할인점과 기업형슈퍼마켓 매장을 전초기지 삼아 빠른 배송에 뛰어들었다. 비대면 소비가 자리잡은 상황에서 오프라인 점포는 정육과 신선식품, 주류 등 킬러 상품군에 주력하고 생필품과 공산품 등은 온라인 판매에 힘을 싣는 투트랙 전략이다. 이미 롯데슈퍼와 홈플러스익스프레스, GS더프레시는 1시간 즉시 배송에 뛰어들었다. 이마트에브리데이도 지난달 '스피드 e장보기'를 론칭하고 퀵커머스 시범 운영에 돌입했다.

시장에선 IT와 물류 인프라 발달로 유통산업 전반에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불명확해지는 '빅블러'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비대면 중심의 소비 패턴 변화로 매장 입지와 규모만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없게 됐다”면서 “전통 유통기업은 그동안 축적한 고객 데이터에 기반한 초개인화 전략과 점포 거점을 활용한 차별화된 배송 경험으로 고객 가치를 높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