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패러다임 전환…중기·벤처업계 "발목잡는 규제완화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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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글로벌 산업지형도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원격의료, 배달로봇, 우주항공 등 신산업 분야 글로벌 선점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신산업분야 혁신기업 탄생이 국가 경쟁력, 혁신지표로 인식될 정도다. 주요 선진국들이 신산업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며 파격 지원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높은 규제장벽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규제, 모호한 규정으로 많은 기업들이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오가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규제는 없앤 만큼 또 생긴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현재의 '포지티브 규제' 환경에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도하기 어렵다. 중소기업·벤처·스타트업 분야 대표 협회·단체를 통해 규제개혁 우선 과제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중소기업중앙회 “규제혁파로 '기업가정신' 되살려야”

“중소기업인들이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기분이라고 합니다. 기업을 옥죄는 규제법안은 한 기업의 생존의지를 꺾는 일입니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본부장
<추문갑 중기중앙회 본부장>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최근 몇 년 사이 기업 성장을 저해하는 규제강화법안들이 쏟아진 데 대해 강하게 질타했다.

그는 모호하고 과도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보완을 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올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한다. 기업 대표자에게 산업안전과 중대재해 책임을 강화했다. 단 한 번 사망사고로도 대표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 법인에도 50억원 이하 벌금과 영업 중단과 같은 행정조치가 가능하도록 했다.

추 본부장은 “그나마 기대를 걸었던 시행령 입법예고안도, 경영계가 요구한 핵심 내용들이 담기지 않았다”면서 “의무주체인 경영책임자가 누구인지 명확한 정의가 없는데다 의무 사항은 모호하고, 의무 이행 시 면책하는 근거도 빠져 있어 경영자들의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주52시간제, 노조3법도 중소기업계에 생존권을 위협하는 '노동규제'라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 7월부터 50인 미만 중소기업에도 주52시간제를 시행했다. 중기업계는 정부에 코로나19 위기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기에 대체공휴일법도 시행되면서 중소 영세업체 인건비 부담은 더 늘어났다. 추 본부장은 “단 한 번 공청회나 현장 의견수렴도 없이 1개월 만에 만들어진 대체공휴일법은 제정과 동시에 시행됐다”면서 “주52시간제로 줄어든 조업시간이 대체 휴무로 더 줄어들면서 중소기업 인건비 부담은 추가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30인 미만 영세중소기업은 내년부터 관공서 공휴일 적용과 대체 휴무 확대라는 충격을 동시에 맞게 된다”고 강조했다.

기업인들의 경영 의지를 꺾고 성장을 저해하는 규제 입법을 혁파하지 않으면 중소기업은 계속해서 경쟁력을 잃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러한 규제들은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두드러진다. 결국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를 더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중기중앙회는 여러 산업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중소기업 양극화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원·하청거래 시 '거래 불공정' △유통시장에서 플랫폼 사업자와 입점업체 간 '시장 불균형' △정부와 공공기관이 제도적으로 최저가 입찰을 유도해 중소기업이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제도 불합리'를 의미하는 '신경제3불' 해소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추 본부장은 “코로나 이후 시대를 대비해 중소기업인이 기업가정신을 되살려 투자를 확대하고 일자리를 늘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기업을 옥죄는 각종 규제를 과감히 철폐해 창업이 늘어나고 중소기업이 신나게 기업 경영을 할 수 있는 환경조성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벤처기업협회 “신산업 진입규제 개혁으로 성장동력 확보해야”

“신산업 영역의 벤처기업들이 가장 어려움에 직면하는 것은 '진입 규제'입니다. 뛰어난 아이디어와 사업모델이 있어도 사업을 아예 진행시킬 수 없는 규제가 아직도 비일비재합니다.”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혁신벤처정책연구소 부소장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혁신벤처정책연구소 부소장>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혁신벤처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이번 정부에서 규제샌드박스 제도와 부처별 적극 행정 장려 등으로 규제 이슈가 호전되고 있지만 규제개선 속도감에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급격한 산업전환으로 인한 사회적 합의 필요성과 기존 전통산업의 소프트랜딩 중요성 등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우리보다 앞서 유사한 이슈를 해결해 수많은 창업과 기업 성장을 이루고 있는 미국, 중국 등 사례를 접하면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원격의료 분야는 20년 넘게 규제에 묶여 제한적 시범사업만 허용되고 있다. 의료인이 개입한 경우에만 허용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일본을 비롯해 독일, 프랑스, 중국, 영국 등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원격진료는 물론 원격조제까지 단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유 부소장은 “도서·산간 지역에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전국으로 허용대상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면서 “원격의료 도입에 따른 병의원의 경영 불안정이나 의료전달체계 훼손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도록 의료수가 개편도 병행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데이터산업의 진흥을 저해하는 법규정 개선도 시급한 과제로 지목했다. 데이터는 미래 산업 원유로 불릴 정도로 자본, 노동과 같은 기존 생산요소를 능가하는 미래 경제 원천이다. 우리나라도 데이터 이용 활성화를 촉진하기 위해 관련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데이터 3법 개정에도 여전히 개인정보, 가명정보, 익명정보 정의와 범위조차 명확하지 않아 기업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유 부소장은 “각 정보의 정의와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시 '전체 매출액의 3% 이하'로 과징금 기준을 상향했다”면서 “중소기업 매출 영업이익률이 2~3%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국내 데이터산업 전반을 위축시킬 만큼 과도한 규제로, 과징금 조항을 '관련 매출액 3% 이하' 기준으로 수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벤처기업은 세상에 없는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해 시장에 공급한다. 벤처기업 속성상 기존 산업영역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그물망 법령체계와는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업계는 이러한 상황을 감안해 '예측 가능한 규제시스템'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유 부소장은 “벤처기업이 보다 안정적으로 신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사람'이 아니라 '제도와 볍령'에 따라 운영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면서 “AI 등 기술을 활용해 법령, 제도 등을 데이터베이스(DB)화해 창업자, 사업자가 쉽게 관련 규제를 확인하고 사업할 수 있도록 종합규제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디지털전환 시대 스타트업이 국가 위상 결정”

“디지털 전환 역량이 세계 무대에서 각국의 위상을 좌우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반 스타트업이 산업 지형을 바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규제장벽을 과감히 낮춰 스타트업을 적극 지원해야만 합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전통산업에 맞춰진 법·제도와 사전규제 정책을 개선하고 리걸테크, 프롭테크 등 신규 사업자와 기존 사업자 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해 코로나19가 세계를 강타한 이래 디지털 전환 역량이 세계 무대에서 각국 위상을 좌우하고 있다. 디지털 기반 스타트업들이 단시간에 유니콘 반열에 오르며 각국의 산업 지형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주요국은 국가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스타트업 신산업 투자를 장려하고 다양한 산업지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여전히 규제장벽이 높아 스타트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 대표는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고 코로나19라는 변수가 디지털 전환을 더 가속화하며 사회 변혁을 이끌고 있다”면서 “한국도 시대적 변화에 맞춰 함께 성장하기 위해 스타트업에 대한 규제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최 대표는 '규제개선 최우선 과제'로 △자율규제 확대와 사후규제 강화 △스타트업 지원 확대와 규제 형평 △전통산업과 스타트업 간 갈등 해결 등 세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대다수 스타트업은 기존 전통산업에 맞춰진 법·제도와 사전규제 정책으로 새로운 사업모델을 발굴하거나 사업을 지속 운영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정부가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선제적인 규제 개선을 시도하고 있지만 산업 현장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가 나서 신산업에서 민간 자율규제를 확대하고 사후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 대표는 “부처 간 규제샌드박스 상설 협력체계를 통해 신속하게 의견교환을 하고 규제샌드박스 참여 기업에 대한 사후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과도하게 기업에 부담을 주는 실증특례 부가 조건을 완화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 지원을 확대하고 규제 형평을 위한 제도적 개선도 시급한 상황이다. '행정규제기본법'은 불필요한 행정규제를 폐지하고 비효율적인 행정규제 신설을 억제하며 기업 자율과 창의를 촉진하기 위해 제정된 법안이다. 그러나 소상공인과 소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스타트업에 해당되는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은 포함되지 않는다. 최 대표는 “스타트업은 기존에 없던 사업모델을 만드는 과정에서 행정규제로 많은 제한을 받는 만큼 법적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리걸테크, 프롭테크, 메디테크 등 스타트업이 기존 산업과 정면충돌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플랫폼 사업자들이 각종 전문분야에서 기존 사업자가 독점하던 정보를 일반시민과 공유하며 소비자 호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기존 사업자들이 플랫폼 가입 전문가에게 불이익을 주고 기업의 영업을 방해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최 대표는 “정부는 스타트업과 전통 사업자 간 간 마찰을 줄일 수 있도록 보다 주도적인 역할 수행해야 한다”면서 “디지털 시대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 이준희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