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유통 기한과 소비 기한

[기자수첩]유통 기한과 소비 기한

“올려야 하는데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우윳값 인상 계획을 물으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유업체들의 공통된 답변이다. 원유가격연동제는 정부, 소비자, 낙농업계 등이 참여하는 낙농진흥회에서 이듬해 원유값을 결정하는 제도다. 지난 2013년에 도입된 제도는 시장 수급으로 가격을 결정하지 않는다. 가격은 낙농가의 생산비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반영, 정해진다. 원유가격연동제가 만들어진 배경은 낙농가를 보호하고 식량 자급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현행 원유가격 결정 체계가 시장 상황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자주 나온다. 얼마 전 우유 관련 이슈가 하나 있었다. 전 식품군에 표시된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바꾸는 법안이 통과됐다. 식품 섭취 기간이 늘어날 수 있는 조치다. 그러나 우유 등 냉장 보관 기준의 개선이 필요한 품목은 제도 적용이 최장 8년 동안 유예가 결정됐다.

낙농가는 애초에 소비기한 표시제에서 우유를 제외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법안 시행일은 2023년 1월부터로, 유예기간을 두더라도 2026년까지 3년을 두자는 입장이었다. 올 7월 공포일 기준 사실상 4년 반 정도 기간을 준비할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최종안에선 기간이 대폭 늘었다. 당시 회의록을 살펴보면 소위 의결 이후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와 낙농육우협회의 의견 전달이 있었다. 2026년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우유 관세 철폐로 말미암아 국내 낙농산업의 생산 기반 축소가 우려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특히 낙농육우협회에서 우유 관세 철폐로 피해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간절한 요청을 해 왔다는 설명까지 덧붙었다.

결국 공방 끝에 15분 휴회 후 낙농가가 주장한 새 기준 적용의 8년 유예안이 최종 결정됐다. 낙농업계는 유제품의 빠른 소비를 원한다. 유업체는 가능한 한 긴 이용 기간을 필요로 한다. 둘의 입장차는 있다. 소비기한 제도 도입의 취지는 식품 폐기율을 줄이고 적정 소비 기간 내 안전한 식품이라는 소비자 인식을 심는 데 있다. 이번 입법안은 특정 이해 단체의 입장에 너무 좌우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박효주기자 phj20@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