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 서거]노태우 전 대통령 민주화와 경제성장 격동기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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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민주화와 경제성장 역사에서 가장 커다란 격동기를 지냈던 인물이다. 12·12 군사 반란을 일으켰지만,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며 민주화에 큰 획을 그었다. 대통령 임기 중에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한 경제성장기를 이끌었고 국가 외교 저변을 크게 넓혔다.

◇북방 외교, 서울올림픽으로 경제성장 알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확장 외교를 통한 국가 경제 발전 초석을 다졌다. 지금도 긍정적 평가를 받는 북방외교 정책이 대표적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공산권 국가들과 유지하고 있는 외교관계는 이 당시 기초를 다져놓은 것들이다. 이는 냉전 종식과 함께 우리나라 기업들이 공산권으로 진출할 기회를 제공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만 해도 적대국으로 여겨지던 소련, 중국과 국교를 맺고 헝가리 등 다른 공산권 국가들과 차례로 국교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북한과 함께 UN 공동 가입 성과를 끌어냈고 남북 고위급 회담을 여는 배경으로까지 활용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노 전 대통령 집권에 큰 호재였다. 노 전 대통령은 1983년부터 1986까지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이를 준비했다. 특히 소련이 참가를 결정하면서 냉전 분단국가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다수 공산국가들이 함께했고, 북방외교는 이를 기점으로 속도를 더했다. 현재 국방 분야에서 아직도 회자되는 '불곰사업'도 이때 일군 성과다. 소련에 제공한 차관을 러시아 군수물자로 돌려받았고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군사기술은 크게 발전했다.

경제성장과 과학기술 발전에도 관심이 많았다. 자유화와 개방화 확대라는 경제정책을 통해 연평균 8.5%라는 고속성장을 누렸다. 올림픽을 개최한 1988년 수출은 600억달러를 돌파했다. 다음해인 1989년에는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국가 입지를 다시 세웠다.

국가 과학기술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대덕연구단지도 노 전 대통령 업적 중 하나다. 8018억원을 투자해 과학기술 중심지이자 국제공동연구의 거점을 1992년까지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고 결실을 거두웠다. 당시 광기술 고화질 TV 등을 전략기술로 지정해 중점 개발하도록 했었다.

◇부동산 공급대책, 언론자유화 현시국에 대한 시사점 남겨

노 전 대통령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 상당수는 현재 정치·사회 분야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부동산 대책이 가장 대표적이다. 현 정권 실책으로 거론되는 부동산 문제에서 노 전 대통령은 대규모 공급을 통한 가격 안정을 실현했다. 이번 정권이 대출 규제 및 세금 등 규제를 통한 거래제한으로 시장을 통제하려 했던 것과 비교된다.

당시에도 부동산 문제는 심각했다. 저달러·저유가·저금리의 3저 호황에 베이비붐 세대들의 서울 상경이 본격화되면서 서울 집값은 고공행진을 기록했었다. 이에 1년 전세계약을 2년으로 연장하는 조치를 취하지만, 승부수는 1기 신도시 개발을 중심으로 한 주택 200만호 공급이었다. 지금 대선주자들이 내놓은 부동산 공약이랑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점이라면 노 전 대통령은 실제로 200만호 주택을 공급했고, 이후 10년간 부동산 가격 안정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언론자유화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 중 하나다. 올림픽이 배경으로 작용했지만, 1988년 신년사에서 그는 “정치인에 대한 풍자의 자유를 적극 허용한다”고 밝혔다. 이때부터 정치인들에 대한 풍자가 본격화되기도 했다. 보도지침으로 대표되는 언론 통제를 약화시켜 비교적 자유로운 언론 보도가 허용됐다. 언론기본법을 폐지해 언론사 설립요건을 완화시키는 등 언론사 수가 늘어나는 환경을 조성했다. 각 언론사에 노조가 설립된 것도 노태우 정부 때였다. 30년도 더 지난 지금 정치권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두고 언론중재법 논란이 벌어지는 것과 대비된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