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에리카, '지역·기술 협력 플랫폼' 구축 나섰다

박태준 한양대에리카 산학협력단장 “기존 패러다임 넘어서는 새로운 산학협력 모델 구축”

한양대에리카, '지역·기술 협력 플랫폼' 구축 나섰다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이하 한양대 에리카)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역산업연계대학 오픈 랩(Open-Lap) 육성지원사업'을 통해 국내 산업계의 오픈이노베이션 활성화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사업은 대학 연구실을 개방형 혁신연구실(Open-Lap)로 지정, 연구개발을 수행토록 하고, 그 성과와 인력을 해당지역 기업에 맞춤형으로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대학이 공급한 기술·인력을 젖줄 삼아 기업에서 신속한 제품 상용화를 추진, 지역산업 활성화와 청년 일자리 창출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모델로 알려졌다.

22일 학계·산업계에 따르면 한양대 에리카는 지난 7월 충남대(충청권), 경북대(대경권과 강원권), 전남대, 제주대(이상 호남제주권), 인제대(동남권) 등 대학과 함께 오픈랩 사업 사업자로 선정됐다. 6개 대학은 향후 2년간 총 18억원의 사업비를 지원받아 사업을 수행한다.

선정 대학 중 한양대에리카는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내 주목받고 있다. 대학은 자체적으로 'HY 오픈랩사업 연계 체계'를 구축, 오픈랩 선정을 완료했다.

학교에는 △차세대 메모리 소자용 영역 선택적 원자층 박막증착공정 △나노소재 네트워크기반 유연 투명전극 히터 제조기술(이상 재료화학공학과) △물류 로봇 핵심기술(전자공학부)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의 보호·보수공법 △모듈러 공법 기반 이동형 건물 설계 최적화(이상 건축학부) △바이오산업 시장 선점을 위한 비손상 엑소좀 정밀분리 원천기술(생명나노공학과) 등 6개의 오픈랩이 있다. 오픈랩에는 반월·시화공단, 안산강소특구, 경기테크노파크, 안산사이언스밸리 등 지역 내 산업클러스터 사업인 첨단제조업과 바이오헬스 기술 등이 총망라됐다.

한양대에리카는 이들 오픈랩의 연구개발 지원과 함께 매칭기업에 대한 기술이전은 물론 사업다각화·제조혁신 컨설팅, 스마트팩토리 구축 컨설팅, 스타트업 컨설팅 등을 다각적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한양대에리카, '지역·기술 협력 플랫폼' 구축 나섰다

성과도 이어지고 있다. 이병주 교수 연구팀의 물류로봇기술을 로보에테크놀로지(대표 이상훈), 좌용호 교수 연구팀의 나노소재 기술을 썬텍주식회사(대표 김경태) 등에 이전하는 기술이전 계약도 최근 체결됐다. 연내 10건에 걸쳐 총 15억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성사시키겠다는 게 대학 측 설명이다.

김우희 교수와 넥서스비 최학영 대표 기술이전 체결식.
김우희 교수와 넥서스비 최학영 대표 기술이전 체결식.

◇오픈이노베이션 통합플랫폼 완성 향해 잰걸음=한양대에리카가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관련 사업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있다. 대학은 지난 3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최고의 산학협력 혁신선도대학'의 기치를 내걸고 관련 역량을 강화해왔다.

대학은 산업 현장과의 적극적 연계를 위한 IC-PBL(Industry-Coupled Problem-Based Learning, 산·학 문제기반학습)을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산학연협력단지조성사업, 경기안산 강소연구개발특구지정, 캠퍼스 혁신파크사업 등의 사업자로 잇달아 선정됐다.

이를 통해 산업계에서 선도적인 산업친화형 캠퍼스와 산학연 연계체계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대학 고유기능인 연구개발에서 기업에 대한 기술이전과 스타트업 창업지원까지 이어지는 협력체계를 갖췄다.

김우희 오픈랩 교수 연구팀과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한 넥서스비는 한양대에리카와 업무협약(MOU)를 체결한 세마인베스트먼트로부터 1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기술 상용화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넥서스비는 2015년 창업 준비공간 '한양스타트업사우나'에서 출발, ALD(Atomatic Layer Deposition, 원자층 증착)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력을 기반으로 연매출 10억 원대의 차세대 디스플레이·반도체 장비 제조사로 성장했다.

한양대에리카는 향후 오픈이노베이션 통합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이다. 연구개발 지원과 인력공급을 넘어 기존 기업의 신사업 진출과 스타트업 창업에 필요한 투자지원까지 논스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산학연 생태계를 만든다는 포부다.

오픈랩사업 운영 성과를 이어갈 수 있는 체계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다수 오픈랩이 참여하는 IUCC(Industry-University Collaboration Center)를 구축했다. 초융합 트렌드에 발맞춰 다양한 분야 오픈랩의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영역 간 크로스오버를 통해 시너지효과를 만들어갈 계획이다.

산학협력단을 주축으로 각급 금융기관과 전략적 파트너십도 구축했다. 올해 8월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신한은행과 MOU 체결이 이뤄졌다. 한양대에리카가 지역의 유망한 기업을 발굴하면 각 금융기관이 이들에 대한 금융서비스와 공동 마케팅을 지원할 예정이다.

에리카 산학협력단과 세마인베스트먼트 대학 공공기술 사업화 지원 MOU 체결식 모습.
에리카 산학협력단과 세마인베스트먼트 대학 공공기술 사업화 지원 MOU 체결식 모습.

◇에리카, 스타트업 자금 지원 '박차'=대학은 4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스타트업 자금 지원에 나섰다. 산학협력단이 창업기획자로 등록해 2022년 1월부터 기술·사업적 성장 가능성이 높은 스타트업과 신규사업 진출기업에 창업 및 운영자금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세마인베트스먼트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한 것도 이 같은 행보의 일환이다. 벤처캐피탈업체인 세마인베스트먼트는 한양대에리카가 발굴, 추천한 지역기업에 대해 투자를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김우승 한양대 총장은 “투자에 한계가 있는 중소기업일수록 대학의 우수한 성과를 활용하고 연구인력과 협력하는 것은 필수적”이라며 “ICT 융복합 소재·부품의 첨단제조업, 바이오헬스 등 지역 주력산업과 밀착된 플랫폼 구축을 통해 반월·시화공단, 안산강소연구개발특구 등 지역 산업·R&D 클러스터와의 연계성 강화에 주력할 것”이라며 의지를 밝혔다.

김우희 교수 연구팀의 차세대 메모리 소자용 영역 선택적 원자층 박막증착 공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모습.
김우희 교수 연구팀의 차세대 메모리 소자용 영역 선택적 원자층 박막증착 공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모습.

◇지구촌 산업계, 오픈이노베이션 '합종연횡'=글로벌 시장에서 구글과 P&G는 '오픈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을 적극 활용하는 기업으로 손꼽힌다.

오픈이노베이션은 세계적 기업혁신 전문가 헨리 첼스브로(Henry Chesbrough) 교수가 제시한 개념이다. 혁신에 필요한 기술과 아이디어 개발에 외부 자원을 활용하는 것을 뜻한다. 대학이나 연구기관, 심지어 타 기업의 성과까지 적극적으로 수용, 사업화함으로써 신기술·신제품 연구개발(R&D) 부담을 대폭 줄이면서 높은 성과를 기대하는 장점을 갖고 있다.

P&G는 오랄비 전동칫솔, 팬틴 샴푸, 페브리즈 방향제, 프링글스 감자칩 등 우리 일상에서 익숙한 제품들을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개발했다. 이 회사는 아예 'Connect+Develop'라는 이름의 고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검색엔진으로 시작해 안드로이드(모바일 OS), 알파고(AI) 등으로 사업을 확장, ICT의 공룡이 된 구글도 혁신동력을 외부에서 찾는 대표적 기업이다. 스마트안경(Google Glasses) 등으로 유명해진 '구글X랩(Google X Lab)'은 오픈이노베이션 R&D센터를 표방한다.

이밖에 자율주행자동차, 지능형로봇, 성층권까지 기구를 올려 보다 넓은 지역에 와이파이 전파를 뿌리는 '프로젝트 룬(Project Loon)' 등 다양한 연구개발과 사업화를 오픈이노베이션 기반으로 수행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지 '포브스(Forbes)' 분석에 의하면 글로벌 상위랭커의 연구개발·스타트업 등의 외부 연계율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픈이노베이션을 적극 활용하는 기업일수록 높은 성과를 거뒀다. 2016년 기준 '포브스 500'의 상위 100개 사의 외부 연계율은 68%를 상회했다. 하위 100개 사 32%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연구개발 투자총액 상위 10개 사의 오픈이노베이션 의존도는 더욱 도드라진다.

국내기업도 오픈이노베이션을 적극 도입하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LG전자는 2018년부터 캐나다 토론토에 '인공지능연구소(Toronto AI Lab)'를 운영하고 있다. 토론토 대학과의 협력을 통해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같은 해 현대자동차는 이스라엘에 '현대크래들델아비브(TLV)'를 개설했다. 자율주행 인공지능 기술개발을 맡겼다. 두 회사는 해당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을 갖춘 스타트업 발굴과 투자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박태준 한양대에리카 산학협력단장 인터뷰>

박태준 한양대에리카 산학협력단장.
박태준 한양대에리카 산학협력단장.

“전기자동차는 일론머스크(Elon Reeve Musk)가 세 번째로 시도한 사업입니다. 첫 번째로 창업한 집투(Zip2)는 인터넷 지도회사고, 그 다음의 페이팔(PayPal)은 온라인 결제회사죠. 집투는 현재 HP가 인수했고, 페이팔의 주인은 이베이입니다.

HP나 이베이 입장에서 보면 오픈이노베이션을 실행한 거죠. 만약 일론머스크의 전기자동차 아이디어를 폭스바겐이나 현대자동차가 가져와 사업화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테슬라를 넘어서는 거대공룡이 탄생했을지도 모르죠.

이들은 지금 테슬라와 대항하기 위해 천문학적 연구개발 비용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오픈이노베이션의 중요성이 잘 드러나는 사례죠.”

박태준 한양대에리카 산학협력단장은 오픈이노베이션을 가장 효과적이고 용이한 기업혁신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수많은 글로벌 기업이 이를 신사업 진출과 경쟁력 배가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활성화돼 있지 않아 안타깝다는 설명이다.

기술과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대학에는 사업화를 이끌 자원이 없고, 기업에는 혁신 의지를 뒷받침해줄 기술과 인력이 부족하다. 대학과 기업 서로가 원하는 걸 갖고 있는데 단지 이것을 연결할 수 있는 허브가 없어 실제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게 그가 내린 결론이다.

특히 그가 강조하는 것은 지역과 밀착된 산학협력시스템이다. '지역산업연계대학 오픈랩 육성지원사업'에서 한양대에리카가 담당하게 된 서울·경인권에는 ICT가 융복합된 부품·소재기업들이 밀집해 있고 이들 중 상당수가 자체 연구개발 수행이 어려운 중소기업들이다.

스타트업 단계에서는 혁신의지가 충만했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여건에 밀려 혁신에 실패하고 결국 도태하는 기업들을 숱하다. 그런 면에서 이 사업에 대한 기대가 누구보다도 크다.

이에 박태준 단장은 오픈랩 육성지원사업이 국내 산학협동 관행을 크게 바꿔놓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이전까지의 산학협력은 보통 대학이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연구개발과제를 기업이 지원하는 형태로 운영됐다”며 “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방향도 대체로 일방적이었지만, 오픈랩을 통해 양방향의 소통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은 기업이 곧바로 사업화에 적용할 수 있는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그 성과를 이전받은 기업이 속도감 있게 사업화를 추진,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토대가 구축됐다”며 “지금의 모델을 발전시켜 지속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 우리 사업단에 주어진 가장 큰 숙제”라고 덧붙였다.

협력단은 사업의 성공과 지속성 확보를 위해 박 단장은 대학에서 기업으로 이어지는 기술 생태계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각 오픈랩 성과를 공유하고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한 IUCC의 구축, 펀드 조성과 금융기관 파트너십을 통한 기존 기업의 신규사업 진출, 스타트업 창업의 자금줄 마련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 오픈랩을 기반으로 다양한 기술이전과 사업화 성과를 축적, 산학협력의 패러다임을 바꿈으로써 우리나라의 미래 산업기반을 튼실하게 다져갈 계획이다. 임중권기자 lim918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