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전인미답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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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건희 삼성 회장.
<고 이건희 삼성 회장.>

1993년 6월 고(故)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삼성 신경영의 시작이자 한국 기업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분기점이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이 회장의 일갈은 그룹 회장에 취임한 후 5년 동안 '은둔의 경영자'로 여겨지던 자신을 전면에 드러내고, 국내 시장에 안주해 꿈쩍도 하지 않던 삼성그룹을 일으켜 세운 채찍이었다.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의 변화와 성장은 더 논의하기도 진부하다. 그 당시엔 상상조차 하지 못한 글로벌 톱5 브랜드에 삼성이 있게 한 출발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화 한 통으로 그룹 사장단과 임원 200여명을 지구 반대편으로 모이게 한 '집합명령' 때문에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즉흥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오랜 기간 치밀하게 기획된 작품이었다. 이 회장은 1993년 1월 사장단 회의에서 “21세기를 대비하기 위한 마지막 기회를 맞고 있다는 각오로 새로운 출발을 하자”고 선언하고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 유명한 '먼지 쌓인 삼성 TV', 선진 제품 비교 전시회 등 이벤트가 이어졌다. 이 회장은 또 일본에서 신경영 선언의 방아쇠가 되는 '후쿠다 보고서'를 읽었다. 그런 후 날아간 프랑크푸르트에서 삼성 품질의 현주소에 재차 절망하며 전 임원을 프랑크푸르트로 소집했다. 그 자리에는 당시 25세 청년이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있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그리고 28년이 흐른 지금 '승어부'(勝於父:아버지를 능가함)에 다가서려는 이재용 부회장이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최근 미국 출장에서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하자는 뜻의 전인미답(前人未踏) 경영을 선언한 것이다. 이 부회장은 “추격이나 뒤따라오는 기업과의 격차를 벌리는 것만으로는 거대한 전환기를 헤쳐 나갈 수 없다”고 진단했다. 또 미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해서는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고 오니 마음이 무겁다”는 말을 남겼다. 흡사 지도에도 없는 새로운 곳으로 항로를 바꿔야 하는 거대한 항공모함 선장의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이재용 부회장이 말한 냉혹한 현실은 고 이건희 회장이 느꼈을 그것과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상황 판단은 비슷하다. 고 이건희 회장은 질보다 양을 중시하고 품질을 등한시하는 삼성의 문화를 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디지털 시대를 앞두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내부의 암부터 수술한 셈이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은 외부에서 더 냉혹한 현실과 만났다. 이 부회장이 이번 출장길에 만난 이들은 모더나, 버라이즌,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구글 등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과 백악관 및 의회 인사들을 망라한다. 이재용 부회장이 “미래 세상과 산업의 지도가 새롭게 그려지면서 생존 환경이 극적으로 바뀌고 있다”면서 “아무도 가 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서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 가자”고 당부한 배경이다.

다른 것은 또 있다. 고 이건희 회장에게는 세계 최고의 품질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부족했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기술이라는 무기가 있다. 미국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샅샅이 조사하면서 대책을 마련하는 백악관 회의에 삼성전자를 빠짐없이 부른 것은 바로 기술 때문이다. 삼성이 반도체 시장에서 압도적인 기술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새로운 파운드리 공장 건설을 확정지은 것도 삼성의 기술을 자국 땅에 유치하기 위한 미국의 의도와 줄다리기가 있었다.

결국 지금의 삼성을 있게 한 것은 기술이고, 미래의 삼성을 만들어 갈 것도 기술이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나서는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에게 등불이자 나침반은 바로 기술뿐이다. 기술이 없으면 찬밥 신세가 될 뿐이다.

양종석 산업에너지환경부 데스크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