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롯데 '혁신의 시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비대면 화상 회의로 진행된 2021 상반기 VCM에 참석한 모습.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비대면 화상 회의로 진행된 2021 상반기 VCM에 참석한 모습.

롯데의 경쟁자는 신세계다.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 리뉴얼한 이마트 9개 점포는 매출이 26% 늘어났다. 상권 변화에 맞춰 미래형 점포를 구축했다. 온라인 물류센터 기능을 강화, 온·오프라인 통합 거점으로의 변신을 꾀했다. 올해도 18개 점포를 리뉴얼하며 혁신을 이어 갔다. 정점은 온라인 배송센터인 'PP센터' 강화다. 온라인 장보기 물량을 하루 최대 15만건까지 늘리고 상품 구색과 품질 경쟁력도 높였다. 이베이코리아 인수를 통해 e커머스 사업에도 힘을 쏟는다. 결국 쿠팡처럼 물류 네트워크를 강화, 익일 배송 체계를 전국에 깔겠다는 복안이다. 이베이코리아의 효자 아이템으로 꼽히는 멤버십 서비스 '스마일클럽'을 벤치마킹, SSG닷컴으로의 확대도 추진한다.

롯데도 '유통 명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구조조정과 파격 인사로 미래 모습을 새로 쓰고 있다. 롯데마트는 유례없는 실적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올해 들어 두 번째 인력 조정을 시행했다. 2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실시한 희망퇴직으로 7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지난달 30일에는 2차 희망퇴직을 받아 130여명이 신청했다. 몸집도 줄였다. 지난해에만 12개 점포를 폐점했다. 부실 점포 문을 닫으며 지난해 190억원의 흑자를 냈지만 올해는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다. 상반기에 250억원의 적자를 봤다.

결국 신동빈 회장이 칼을 빼 들었다. 지난달 25일 단행한 인사다. 공채 순혈주의를 잘라 냈다. 그룹 핵심인 유통과 호텔 사업 총괄 수장에 외부인사를 영입했다. 지난 2017년부터 시행한 사업부문(BU) 체제도 폐지했다. 업종 특성을 고려, 헤드쿼터(HQ) 체제로 변환했다. 책임경영과 빠른 실행력을 위해서다.

유통 총괄은 홈플러스 부회장을 지낸 김상현 부회장이 선임됐다. 계열사 주요 보직을 꿰차던 롯데백화점 수장 자리조차 2019년 신세계그룹에서 영입한 정준호 대표가 내정됐다. 마트, e커머스 수장도 모두 외부인재로 채워졌다. 연공서열 문화가 확실한 롯데 내부에서도 '충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979년 롯데쇼핑 설립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신 회장의 처방전이 어떻게 약발을 발휘할까. 롯데쇼핑은 올 3분기까지 매출 11조7892억원, 영업이익 982억원을 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 3.6%, 영업이익 40.3% 떨어진 수치다. 같은 기간 이마트는 영업이익을 2237억원이나 올려 6.3% 증가했다. 코로나19로 성수기를 맞은 e커머스 등 온라인 전환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롯데는 유통 대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온라인 전환을 외쳤다. 옴니채널을 강조하며 '롯데온(ON)'을 시작했지만 3조원 넘게 쏟아부은 돈에 비해 성과는 미미하다.

조직문화부터 바꿔야 한다. 롯데는 '상명하복'에 반세기 동안 길들여 왔다. 글로벌 기업처럼 수평적 조직문화를 심고 아래로부터 개혁이 나와야 할 때다. 새로운 수장은 개혁의 눈으로 발전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5년 후, 10년 후 롯데의 미래를 그려야 한다. 대세로 자리 잡은 e커머스 전략도 더 이상 미룰 시간이 없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다. 롯데는 형제의 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SHAAD, 사드) 보복, 일본 제품 불매 등 온갖 수난을 겪으며 상처를 받았다. 시련의 시간이 혁신과 성장을 키우는 내공으로 작용해야 한다.

김정희기자 jha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