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국가의 융복합 연구지원. 그런데 누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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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랖 수준의 호기심이 없다면 지금도 인간은 원숭이와 별 차이 없이 정글이나 사바나 어딘가에서 무리를 지어 헤매고 있을지 모른다. 눈앞에 닥친 문제를 넘어 그다지 별 필요없어 보이는 것에 관심을 보이고, 또 마음껏 뒤지고 파 보라며 학교와 연구소라는 제도에 천문학적 자금으로 후원까지 하는 것은 인간뿐이다. 호기심덩이이다 보니 항상 알고 있는 것 너머로 눈길을 돌리게 되고, 결국 배움과 연구가 진보해도 질문은 늘어만 간다.

그 많은 문제와 씨름하며 평생을 보내다 보면 각자는 좋은 의미, 나쁜 의미 모두에서 전문가가 된다. 좋은 의미란 특정 영역의 문제를 이른바 프로답게 바라보고 해결할 줄 안다는 뜻이다. 나쁜 의미란 그 영역을 넘어서면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평범해진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흔히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이상적 융·복합 지식인으로 치켜세우지만 그가 언제적 사람이던가. 지금은 1~2년 글줄 읽고 선생 밑에서 기술 연마한 것으로 안다고 행세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만약 지금 누군가가 자기 자신을 다빈치적 팔방미인으로 내세운다면 불세출의 천재가 아닌 다음에야 돌팔이일 가망성이 십중팔구다. 우리 모두 전문가임을 자랑하자! 스티브 잡스가 컴퓨터와 정보기술(IT)에 인문학을 녹여 냈다는 말에 지나치게 열광해서 융합, 복합을 '아브라 카다브라!' 주문처럼 노상 되뇔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어떤 경우에는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세상이 복잡해져서 그런 일이 점점 늘고 있다. 팬데믹이나 미래 에너지 정책 수립처럼 이전에는 만날 일이 별로 없던 전혀 다른 분야의 전문가, 정치학자나 경제학자와 IT 분야나 공학·의학 전문가 간 협업이 요구되는 경우에 문제가 발생한다. 늦어도 고등학교 2학년쯤 문과와 이과로 헤어져서 서로 소 닭 보듯 살아온 전문가들은 마치 어제 헤어진 양 서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기를 바란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일단 언어와 관심이 한참 다르다. 한 사람은 화성어, 다른 한 사람은 금성어를 각각 이야기한다. 결국 실제로 손에 잡힐 만한 결과를 내려면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은 참여 연구자로부터 상당한 열의와 헌신과 인내를 요구한다. 또 제도가 받쳐 줘야 한다. 연구소의 운영방침과 경험도, 연구비 규모나 정산 방식이 분야마저도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가 나서서 이를 해결해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융·복합 연구가 가뜩이나 바쁜 연구자에게 스트레스 근원이 될 수도 있다. 문·이과를 뛰어넘는 융·복합 연구를 해야 한다고 외친 지 시간도 꽤 지났지만 연구자 관심이 오히려 시들해지거나 심지어 기피현상까지 나타나는 것은 아마도 방금 말한 어려움 때문일 것이다.

결국 융·복합 연구의 성장은 의지와 시간과 자금 동원 능력에 달렸다. 이 모든 것을 지닌 가장 강력한 존재는 국가다. 그 국가에 좋은 두뇌가 장착돼야 한다. 한 가정도 규모 있는 살림을 하려면 장기·중기·단기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지출 우선순위를 마련한다. 상당한 재원이 투자되는 연구 지원은 말할 나위조차 없다. 좋은 콘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그런 것이 있는가.

이 질문은 국가의 중장기적 연구지원정책수립을 담당하는 체계조차 여전히 불분명한 인문사회계에 특히 뼈아프다. 한마디로 국가적 차원의 융·복합 연구 지원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주체가 인문사회계에는 부재하다는 의미다. 융·복합 연구의 한 축이 이렇게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그를 파트너로 삼아야 할 이공학이나 자연과학 분야에도 좋지 않은 소식이다.

윤비 성균관대 교수·한국연구재단 사회과학단장
윤비 성균관대 교수·한국연구재단 사회과학단장

여전히 융·복합 연구 지원에 대한 목소리는 높다. 얼마나 많은 기관에서 관련 회의가 열리고 지원정책과 연구비가 편성되는지 파악하기조차 어렵다. 그에 비해 효율적 국가의 융·복합 연구 지원을 위한 제도적 인프라에 대한 고민은 별로 듣지 못한다. 우리는 올바른 길을 지금 걷고 있는가. 되돌아볼 때다.

윤비 성균관대 교수·한국연구재단 사회과학단장 homoridens@nrf.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