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산업 중요성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일견 인공지능(AI), 바이오, 전기자동차 등 굴지 산업이 많은 데 아직도 '소재'냐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전통적 화학 기술 이외에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 나노기술(NT) 등 각종 신기술이 도입되거나 이를 실제 구현하기 위해서는 기존 소재와는 전혀 다른 신물질 또는 기존의 재료를 응용, 발전시켜 과거에 없던 구조적 성질이나 고도의 기능을 나타내는 고부가가치 소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즉, 소재 없는 신산업 발달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 같은 소재산업 중요성은 '소재' 정의부터 살펴보면 보다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소재란 넓게는 '상품의 제조에 사용되는 원재료 또는 중간 생산물'을 의미하나 최근에는 '소재 중에서도 최종 생산물의 고부가가치화에 기여도가 큰 제품'이라는 제한적 의미로 종종 사용된다. 이에 소재 산업은 직접적으로 자체 시장성에 의해 경제 성장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관련 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발전을 촉진시킨다.
우리가 즐겨 먹는 식품의 포장지 역시 새로운 소재의 발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한때 우리가 가장 즐겨 애용했던 사진과 비디오테이프, 카세트테이프 역시 고분자 필름이라는 신소재 덕분에 구현 가능한 기술이었다.
'산업의 쌀'이라 불릴 정도로 광범위한 분야에 사용되는 반도체도 알고 보면 실리콘 소재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한때 사진, 비디오 등에 사용된 고분자 필름은 최근에는 디스플레이 반사 방지 및 각종 전자부품의 전기절연재, 주택의 냉난방을 위한 열선 차단 필름 등에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소재는 한 번 개발하면 평생 사용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해당 소재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기술과 제품이 계속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재 중요성과 경제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소재 경쟁력은 열악한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저부가가치 소재로 분류할 수 있는 합성고무, 플라스틱, 합성섬유 원료 등 범용 석유화학 제품군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무역 수지를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고부가가치 제품인 정밀화학 및 기타 화학 제품은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이에 반도체,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수출을 통해 엄청난 수익을 거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구성하는 부품과 소재 거의 대부분이 일본 등 선진 국가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소재 분야에서 취약한 이유는 소재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회사가 적기 때문이다. 전문 소재 기업이 없다는 것은 대부분의 한국 소재 기업이 핵심 원천 기술의 부재 속에서 사업 규모를 확장하면서 '부품 기업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정 수준의 기술 축적 없이 자체 개발이 어렵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취득이 용이한 양산 기술 축적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단 시간에 규모의 성장은 가능하지만 제품의 빠른 진부화 현상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경우 투자비용을 회수할 기간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주력 제품의 급격한 수익성 하락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소재산업의 특성상 개별 기업 단위 노력만으로는 관련 분야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해외 역시 소재 강국 대부분은 국가의 전폭적이면서 장기적인 지원 속에 탄생한 기업이 많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1900년대 초기부터 고부가가치 소재 개발에 투자를 해왔으며 지난 한 해 동안만 9개의 연방기관이 투자한 금액은 21억 2000만달러에 이른다. 독일의 경우 2000여개 부품 소재 기업이 박람회, 세미나, 산학협력 등을 통해 다양한 신소재 개발을 적극 추진해 온 산업 환경이 오래전부터 구현되는 상황이다.
최근 우리 경제는 지속가능한 산업 육성과 함께 기존 주력 산업 경쟁력 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마 위의 내용을 통해 이 두 가지 모두 소재 분야를 육성한다면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aijen@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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