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전국민 맞춤형 정책으로 '나를 위한' 대한민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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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웅래 민주연구원장은 17·19·20·21대 국회의원을 지낸 관록의 정치인이다. 1982년 매일경제신문을 거쳐 1985년 MBC에 입사, 21년 동안 사회부·경제부 등 취재현장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2003년 언론생활을 마무리하고 정치에 뛰어들어 2004년 17대 국회에 입성해 문화관광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국회운영위원회 등에서 활동했다. 18대 낙선 후 재입성한 19대와 이후 20·21대 국회에서는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안전행정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남북관계와 교류 협력 발전 특별위원회, 국민안전혁신특별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등에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의정활동에 쉼 없이 매진하고 있다

노웅래 민주연구원장
노웅래 민주연구원장

올해는 육십갑자로 임인년(壬寅年)이다. 임인년을 흔히 검은 호랑이의 해라고 표현한다. 음양오행설에서 임(任)은 크고 거센 물을 뜻하고, 인(寅)은 곧게 뻗어나가는 나무를 뜻한다. 2022년은 아름드리나무가 강한 물의 기운을 만나 무럭무럭 자라는 상생의 기운으로 작용해 우리 국민 모두가 막힘없이 발전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옛날 한 스승이 제자들에게 밑 빠진 독에다 물을 채우라고 했다. 그러나 제자들이 아무리 바가지로 물을 부어 넣어도 독에는 물이 채워지지 않았다. 지친 제자들은 스승에게 도저히 물을 채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스승은 밑 빠진 독을 들어 연못에 담궜다. 당연히 독은 물로 가득 채워졌다. 판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 발상 전환이 중요함을 일러 주는 일화다.

지금 인류는 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도전의 질과 양 측면에서 과거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인구절벽, 기후 위기, 4차 산업혁명, 코로나19, 미-중 신냉전 등이 그것이다. 예전 같으면 한 세대에 하나 겪을까 한 엄청난 변화를 우리 세대는 동시다발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대변혁 시대에는 사회구조뿐만 아니라 사고방식·가치기준, 나아가 감정까지도 바뀐다. 이에 따라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전통적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독을 연못에 집어넣을 각오를 해야 한다.

[ET시론]전국민 맞춤형 정책으로 '나를 위한' 대한민국을

2020년 주민등록 기준 내국인이 3만여명 감소했다. 내국인 감소는 1950~1953년 한국전쟁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오는 2031년에 시작된다던 인구절벽이 11년 앞당겨졌다. 현 추세로 가면 2050년부터 2년마다 울산시 규모 인구가 사라지고, 2300년께는 한국인 자체가 소멸될 것이라고 한다. 인류 멸망 훨씬 이전에 이미 한국인은 멸종돼 있을 공산이 크다는 전망도 있다.

2006년부터 15년 동안 정부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투입한 예산이 225조3000억원인 가운데 합계출산율은 1.07명(2005년)에서 0.84명(2020년)으로 오히려 떨어졌다. 올해 저출산 예산은 46조원이지만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도움될지는 미지수다. 문제는 도대체 뭘까. 바로 밑빠진 독에 물을 부으려 했기 때문이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저출산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저출산을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로 받아들여야 한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밑 빠진 독에다 물을 부을 것이 아니라 저출산 시대의 산업, 부동산, 일자리, 복지, 연금, 교육, 이민 등 변화에 '잘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저출산 현상과 싸우려 들지 말고 친하게 지내야 한다. 이것이 진화 법칙에도 맞다. 저출산이 반드시 재앙만 가져오는 것만은 아니다. 산업혁명으로 늘어난 인구는 1, 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됐지만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면 자원 배분을 둘러싼 갈등이 줄면서 전쟁 발발 가능성도 희박해질 수 있다.

저출산은 인종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인구가 많을 때는 타 인종에 대해 배타적으로 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인구가 적어지면 다양한 국적과 피부색을 띤 사람들과의 공존·협력은 불가피하다. 이처럼 저출산의 양면성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 하나씩 적응해 간다면 저출산 문제는 차차 극복될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부동산 문제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문제의 핵심은 인구구조와 가구 형태 변화에 따른 주거 안정이다. 그러나 '집값 억제'와 '불로소득 근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규제 위주로 접근했다. 그 결과 2017~2021년 5년 동안 26회에 걸친 정부 부동산대책 발표에도 서울지역 아파트 평균가격이 6억7000만원에서 12억4000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저출산과 마찬가지로 애초 정한 정책 목표와는 정반대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부동산은 대선에서 중요한 화두이기 때문에 대선주자도 차별화한 부동산 정책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후보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공급 확대, 공시지가 재검토, 세 부담 경감, 세입자 보호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부동산 해법은 너무 뜨거워도 안 되고 너무 차가워도 안 된다. 다른 경제문제와 마찬가지로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 모두 필요하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으려고 하면 하루 종일 물을 부어도 채우는 데 실패할 것이다. 독을 통째로 물에 집어넣어야 한다.

집값을 잡으려고 무리한 수단을 쓰기보다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주거생활을 영위하도록 하는데 정책 목표를 둬야 한다. 그래야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개별 정책이 나올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집값도 진정될 것이다. 예를 들면 초·중·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세입자에게 6~10년의 장기임대차를 보장하고 소유자에게는 세제·대출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외과 수술적 정책'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이런 정책 사례에서 핵심은 많은 세입자의 고민인 자녀 학교 문제를 정책에 반영한다는 점이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블록체인과 메타버스가 이끄는 시대에는 20세기식의 획일적이고 이념적인 정책은 통하지 않는다. 데이터 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이제는 모든 국민에게 실사구시적 맞춤형 정책을 제공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랬을 때 비로소 우리는 정책에도 사람의 온기와 감동을 담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나를 위한' 대한민국의 미래상이 아닐까.

노웅래 민주연구원장, 서울 마포구갑 국회의원 csrimfre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