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의료 민주화의 시작 '마이데이터'

글자 작게 글자 크게 인쇄하기

지금까지 환자는 '가부장적 의료'의 전통을 따라야 했다. 의사는 환자에게 최선의 의학적 판단을 제공하며 결코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므로 의사의 결정과 지시는 환자가 무조건 따라야만 한다는 것이다. '의료부권주의'(Medical Parternalism)는 의식불명 상태로 수술대에 놓인 환자처럼 전문적 처치가 절대적인 응급상황에는 맞는다. 하지만 오늘날 더 큰 건강 문제들인 만성질환, 정신건강, 치료 후 회복과정, 예방적 건강관리, 고령화에 따른 신체 장애처럼 의료 전문가도 별 뾰족한 수를 못 내는 복잡 만성 상황에서 한 달에 한 번 5분의 짧은 진료 시간에 주치의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나머지 24시간, 365일은 온전히 환자와 가족의 몫이다.

환자의 건강정보를 환자 자신에게 돌려주자. 처음엔 암호문같이 난해하고 무슨 뜻인지, 어떻게 사용하는지 못 알아채겠지만 곧 유능한 비서로 성장한 인공지능(AI)이 도와줄 것이다. 병원의 어두운 서버실에 갇혀 있던 의료데이터가 스마트폰을 통해 햇볕을 쬐기 시작하면 그토록 어렵다던 의료데이터 표준화와 데이터 통합과 상호운용성 문제도 단숨에 해결될 것이다. 저명한 빅5 병원들도 서로 다른 의료용어를 사용한다. 소통이 안 돼 바벨탑처럼 무너질 운명이다. 경쟁관계인 병원들 스스로는 의료 언어를 통합할 동기가 없다.

환자와 가족의 24시간, 365일은 의사의 5분만으로는 할 수 없던 일들을 해낼 것이다. 환자와 가족의 의학적 문해력도 높아지고, 누군가는 난해한 의료용어를 알기 쉬운 말로 번역할 것이고, 누군가는 멋진 일러스트레이션과 동영상으로 도움을 줄 것이다. 내 몸에 관한 정보, 내 가족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는 정보에 담긴 희망을 100% 활용하고픈 강렬한 소망이 전문가도 생각하지 못했던 멋진 세상을 열 것이다. 스마트폰은 웨어러블 장비와 연결되고, 다양한 센서로 식이·운동·환경 정보를 24시간 채집할 것이다. 의료는 진료실 밖 무한공간으로 확장되고, 머지않아 환자 스스로 병원보다 더 많은 건강 데이터를 생성하고 연결할 것이다. 메타버스에서도 의료는 엔터테인먼트와 금융 다음으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인기 콘텐츠일 것이다.

2022년은 한국 마이데이터 서비스 원년이다. 정보 주체에게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돌려주는 마이데이터의 첫 출발은 금융이었다. 2019년 오픈뱅킹, 2020년 데이터 3법 개정 완료, 2021년 본인신용정보관리업 신설로 28개 사업자가 허가를 받았다. 닻은 올려졌고, 대표 규제산업이던 금융업의 대항해는 시작됐다.

금융 다음은 의료 마이데이터다. 관련 법 개정안도 국회 심의 중이다. 의료 데이터는 금융보다 더 방대하고, 비표준적·분절적이며, 변화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프라이버시 침해 공포도 더 커서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은 서비스 제공자가 기관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로 데이터를 다운로드하는 금융 방식은 허용되지 않았다. 오직 환자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만 데이터를 전송받아 서비스 제공기관에 전송하는 방식만 허용됐다. 탈중앙화된 개인 스마트폰의 프라이버시 보호 능력이 중앙화된 클라우드 API보다 더 높다는 뜻이다.

본인 건강기록을 스마트폰으로 전송받는 것은 의료법 21조의 '의료기록 열람권'으로 보장된다. 하지만 서로 다른 병원에서 오는 뒤죽박죽된 데이터는 상호운용할 수 없다. 필자는 지난해 데이터산업진흥원의 지원으로 만성콩팥병과 장애재활 환자용 '헬스아바타' 앱으로 의료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시작했다. '헬스아바타' 플랫폼은 2010년부터 미래창조과학부 지원으로 개발해 왔다. 방대한 의료의 전체는 아니지만 24개 참여 의료기관의 콩팥병과 장애재활 데이터의 상호운용성만큼은 확보해 왔다.

이제 환자의 건강정보를 환자 자신에게 돌려줄 때가 됐다. 자기 건강의 더 많은 부분을 스스로 관리하는 반의료인이 되도록 북돋아 주자. 병원에 갇혀 있던 의료데이터에 마이데이터 서비스라는 햇볕을 쬘 시간이다. 의료민주화의 시작이다.

[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의료 민주화의 시작 '마이데이터'

김주한 서울대의대 정보의학실 교수 juha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