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기업은 과거 금융회사가 감히 즐겨 사용하지 못한 일련의 단어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 구현에 도전하고 있다. 금융회사가 신규 상품을 출시하며 '신속한' '저렴한' '용이한' 등 수식어를 사용하는 경우는 좀처럼 드물다.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서류를 추가로 요청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신속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전문분야의 지원을 요구하기 때문에 저렴할 수 없으며, 용이성도 확보하기 어렵다. 하지만 핀테크 회사는 자신들만의 무기를 바탕으로 신속하고 편리하고, 저렴한 서비스를 구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회사는 어떤 이유로 금융산업에 관심이 많은 것일까. 가장 먼저 금융산업의 근간은 다양한 정보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정보 기반 산업이기 때문이다. 금융은 송금·입금 등 기본적 금융거래를 디지털 정보로 처리하고 있으며, 금융소비자에게 어떠한 혜택을 부여하는지 역시 이들의 거래 내역과 현재 재무 상태 등 일련의 정보를 기반으로 판단하게 된다. 이러한 금융업 특성을 주목해 일찍이 빌 게이츠는 인터넷 발달과 함께 “금융서비스(Banking)는 필요하지만, 은행(Bank)은 필요없을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이미 전개되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ICT 기업이 금융업에 관심을 보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시장 규모다. 실제 국제결제은행(BIS)과 블룸버그 데이터서비스 등에 따르면 글로벌 자산시장 규모는 2017년을 기준으로 이미 1000조달러(약 107경원)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엔 금과 은, 외환거래, 주식·채권 시가총액, 파생상품 거래 규모, 부동산 가치 등 만이 포함된다. 이러한 금융자산 시장 규모는 이미 세계 총생산보다 12.8배 이상이다.
다음으로는 그간 금융업에 적용하는 다양한 규제가 금융업의 진화, 발전 내지 다양한 협업체계 구축을 억제해 왔다. 일반적인 제조업 경우에는 핵심역량 분야를 제외하고 여타 부분은 전부 아웃소싱 등 형태로 외부 전문 회사와 협업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애플은 제품의 가장 핵심 부분인 디자인, 플랫폼 운영 등 부분에만 관여한다. 제조는 대만의 팍스콘에 위탁 생산한다. 그리고 유통 역시 세계 각국에서 애플 제품 유통을 희망하는 회사에 적절한 권한을 주고 이를 관리하는 형태로 대응한다. 건설, 의약, 콘텐츠 등 거의 모든 산업이 이러한 역량 있는 외부 세력과 제휴를 통해 본연의 경쟁력을 더욱 높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금융업은 상황이 다르다. 대부분 금융회사는 철저하게 수직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금융상품 설계, 판매, 사후관리 등 모든 영역을 특정 금융회사가 온전히 혼자 수행한다. 금융 관련 개인 정보를 취급하는 금융업 특수성으로 인해 일정 업무 파트가 외부화될 경우 해당 정보가 외부로 반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업무 환경과 유사한 환경 속에서 성장해 온 또 다른 산업 분야가 ICT 분야다. ICT 역시 수많은 고객정보를 처리하고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열거한 바와 같은 이유로 현재 다양한 형태 ICT 기업이 이미 포화상태인 자신들의 시장을 벗어나 금융산업으로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향후 전통적인 금융회사와 ICT 기업 중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아니면 불편한 공존을 할지 지켜보자.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aijen@m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