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복수의결권 주식은 스케일업을 위해 꼭 필요하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청년 실업률 증가 속에 고용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벤처창업이 대두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스타트업 지원 논의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사실 창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스케일업이다. 창업한 벤처기업이 성공해서 스케일업을 할 수 있어야만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기 때문이다.

벤처기업은 스케일업을 위해 벤처캐피털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벤처기업의 경영권이 벤처캐피털에 넘어가게 됨에 따라 창업 당시의 비전을 꿋꿋하게 지속하지 못하고 단기적인 재무적 성과에 매달리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반대로 벤처기업의 뚝심 있는 창업자가 외부로부터의 자금 조달을 기피하면 이는 스케일업을 포기해야 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복수의결권 주식은 벤처기업의 스케일업을 지원하는 새로운 제도다. 2017년 11월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혁신벤처선언 2017'을 개최하고 '차등의결권(복수의결권) 주식 도입' 과제가 포함된 '혁신벤처 생태계 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2020년 6월과 8월에는 여당 의원과 야당 의원이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정해 복수의결권 주식을 허용하는 벤처기업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그해 12월에는 정부안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에 제출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법률 개정안은 여전히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더 이상 진척이 없다. 벤처기업의 복수의결권 주식 도입 논의가 시작된 지 햇수로는 벌써 6년째지만 똑 부러진 성과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는 몇몇 국회의원과 일부 시민단체가 벤처기업법을 제대로 읽어 보지 않은 채 법안 폐기를 주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법안 폐기론자의 주장은 복수의결권 주식이 나중에 상법에까지 들어올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한다. 벤처기업법에는 상법과 자본시장법, 더 나아가 기술이전법, 국토계획법 등에 대한 다양한 특례가 마련돼 있다. 벤처기업법은 벤처기업이 처한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고 벤처기업의 원활한 운영과 발전을 위해 이미 시행되고 있는 기존 법률에 대한 특례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벤처 관련 법률 제도가 상법이나 자본시장법으로 전파된다는 소리를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예컨대 2020년에 제정된 벤처투자법은 조건부지분인수계약(SAFE)을 허용하고 있지만 SAFE가 상법이나 자본시장법으로 옮겨갈 것인지에 관해서는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복수의결권 주식이 벤처기업법에 도입되면 상법으로 당연히 확대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수긍할 수 없다.

다음으로 복수의결권 주식이 무능력한 경영자를 과보호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법안 폐기론자의 주장은 벤처생태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벤처캐피털은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이 될 만한 벤처에만 투자하는 속성이 있다. 한국에서 중소벤처기업이 성공할 가능성이 0.1%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 벤처캐피털이 투자한 원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할 확률이 64.8%나 된다고 한다. 벤처기업법 개정안은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벤처기업에 한해 복수의결권 주식을 허용하고 있으므로 벤처기업이 벤처캐피털로부터 자금을 유치했다는 사실만으로 경영자의 능력(혁신성)이 증명된다고 보아야 한다. 영리기업인 벤처캐피털이 오그랑장사를 할 리 없기 때문이다. 벤처기업이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하는 경우에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게 보고해야 하고, 허위보고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한다. 이처럼 벤처기업법상 복수의결권 주식은 정부가 개입해서 촘촘히 감시하는 대상이다. 이 때문에 법안 폐기론은 정부가 무능력한 경영자를 보호하기 위해 한가로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이에 따라 벤처기업의 복수의결권 주식 도입에 반대하는 것은 정부를 믿지 못하거나 이 제도를 잘못 이해하는 것은 아닐까.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jykwon@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