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정치판, 사라진 '신뢰'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수식어만큼 대선 판세가 오리무중이다. 밥상머리에서 가족의 의중을 물어도, 지인의 의중을 물어도 '정말 누구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란 말이 오간다. 확실한 것도 존재한다. “OOO만은 절대 안 돼!”란 것이다.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재명은 아니다' '윤석열은 아니다'라는 무한 반복의 계단 그림이 화제가 된 적 있다. 여야 유력 대선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비호감'이 그만큼 높다는 의미다. 후보 배우자를 향한 집중 조명과 논란도 화제가 된 적이 없다. 비호감 유력 후보 중 누군가를 선택해야 할지 유권자만 고통스러운 상황이다.

고통을 겪어야 하는 이유는 여야 유력 양당 후보 모두가 사회적 자본인 '신뢰'를 주는 후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한국 사회의 대표적 리더인 대통령 신뢰를 크게 잃었다. 믿었던 대통령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느끼는 상황을 맞이했고, 정치권은 심각한 수준의 불신 대상이 됐다.

그렇다면 국민이 기대했던 '신뢰 회복'은 문재인 정권에서 이뤄졌을까. 그렇지 않다. 지난해 5월 민주당이 발표한 '재보궐 이후 정치지형 변화에 대한 결과 보고서'는 변화된 민주당을 보는 시선을 담고 있다. 2020년 총선 당시의 촛불, 등대와 같은 긍정적 이미지가 2021년 재·보궐 선거에서는 '위선' '내로남불' '무능력'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로 바뀌었다.

특히 2030 세대가 정치권을 향해 떠올리는 긍정적인 시선이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을 향한 연상 이미지는 '내로남불, 무능, 성추행·성추문, 거짓말'이고, 국민의힘을 향해서는 '부패, 비리, 친일파, 토착 왜구, 꼰대, 무능' 등이다. 이런 상황이 1년여가 지났지만 크게 바뀐 것 같진 않다.

20대 대선에서도 사회적 신뢰 회복은 어려워 보인다. 우선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특혜 의혹 사건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고발 사주와 장모 특혜 의혹 등의 중심에 있다. 여기에 각 후보 아내의 횡령 혐의와 미투 피해자 폄훼 등의 녹취록 공개까지 이어져 '새로운 5년'을 시작하기도 전에 가장 믿을 수 없는 후보 이미지로 더해졌다.

국가를 이끌어갈 대통령 후보에게 신뢰가 낮다는 것은 전환적 위기를 맞은 대한민국으로서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선택지는 양당 후보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확실한 승리를 가져오지 못하더라도 여론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는 있다. 어느 쪽이 덜 나쁜가 비교평가 해서 차악을 선택하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변화는 작은 틈에서 시작된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