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줌인] EU 지속가능성 실사법 '후폭풍'…ESG 못 맞추면 퇴출

英·佛 이어 내년부터 獨 시행
매출 2% 벌금·공공조달 퇴출
네덜란드, 민·형사 처벌 강화
"글로벌 투자자 우려 불식시켜야"

[뉴스 줌인] EU 지속가능성 실사법 '후폭풍'…ESG 못 맞추면 퇴출

유럽연합(EU)의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법'(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후폭풍이 산업계로 확산할 것으로 전망된다.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재생에너지 100% 사용(RE100)에 이어 또 다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규제가 국제표준이 될 공산이 커졌다. 기업은 ESG 경영으로 대전환하지 않을 경우 국제무대에서 퇴출 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 EU에 진출한 대기업은 현지에 제품을 수출하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체까지 ESG 준수 여부를 인증·보고해야 하는 상황이다.

[뉴스 줌인] EU 지속가능성 실사법 '후폭풍'…ESG 못 맞추면 퇴출

◇영국·프랑스·네덜란드·독일 주도…EU 넘어 세계로 확대

EU 주요 국가는 이미 기업의 공급망 실사를 강제하고 있다. 2015년 영국을 시작으로 프랑스(2017년), 네덜란드(2019년)에 이어 독일이 내년부터 공급망 실사법을 시행한다. 영국은 자국 기업과 공급망을 대상으로 강제노동을 방지하기 위한 회사 정책, 실사 프로세스, 리스크 관리 절차, 효과성 평가결과, 임직원 교육 실사를 하고 내용을 공개하도록 했다. 프랑스도 자국 기업에 공급망 내 인권 현황을 모니터링하고 인권 침해 방지 대책을 공개하도록 했다.

네덜란드는 민·형사 처벌을 강화했다. 사업장과 공급망에 대한 아동노동 근절·예방 성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위반 시 매출의 최대 10%를 벌금으로 내야 하고, 5년 내 2회 이상 법규를 위반해서 벌금을 내면 책임자에게 2년 이내 징역까지 내린다. 독일은 내년부터 자국 기업에 공급망 실사·보고를 의무화하고, 공급망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하거나 환경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기업을 발견하면 매출의 2%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하고 공공조달 대상에서 퇴출시킨다.

EU가 주요국 공급망 실사법을 보강해 공개한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법'은 독일, 네덜란드처럼 기업의 공급망 실사 의무 이행 강제 수단으로 행정제재·민사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또 당장 법안 규제를 준수해야 하는 EU 역내 9400개 대기업(그룹1)에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하기 위한 파리협정의 '탄소중립' 전략과 양립 가능한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그룹1에 이어 위험섹터 사업을 하는 그룹2 중소기업은 2년 뒤 적용된다. 직접 대상 기업은 역내 그룹1, 그룹2에 한정되지만 EU 기업에 거래하는 아시아 등 제3 기업에도 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EU 공급망실사법 초안은 유럽의회와 EU 정부와 1년 이상 지속적인 협의를 거쳐 정식 법안이 완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빛나 한국무역협회 브뤼셀지부장은 “폭스바겐, BMW에 자동차 부품을 공급하는 한국, 일본 등 비유럽 밴더 입장에서 직접적 실사 의무는 없다”면서도 “직접 실사해야 하는 독일 기업과 거래해야 하는 만큼 앞으로는 EU가 요구하는 인권·환경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국제무대에서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U 투자기관, “韓 기업 '탄소중립' 기준 높여라”

EU는 한국 기업을 겨냥해 특히 '탄소중립'에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지속 가능성 실사 의무를 다하지 않은 기업에 민·형사 처벌을 내리는 만큼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유럽 최대 연기금인 네덜란드 연금자산운용(APG)은 지난 7일부터 일주일 동안 삼성전자, 현대제철, SK, SK하이닉스, LG화학, LG디스플레이, 롯데케미칼, 포스코케미칼, LG유플러스, SK텔레콤 등 국내 대기업 10곳에 탄소배출 감축 등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APG는 지난해 1월에는 석탄 화력발전을 지속한다는 사유를 들어 한국전력공사에 대한 투자를 철회한 바 있다. 8월에는 탄소중립위원회에 '석탄발전'에 대한 우려를 담아 서한을 발송하는 등 한국 기업과 정부를 압박해 왔다.

업계에서는 우리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과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 입장에서 ESG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김동수 한국생산성본부 ESG경영연구소장은 “공급망 실사가 본격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인 만큼 한국 기업은 글로벌 투자자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행정제재·민사소송 예방을 위한 리스크 관리에 나서야 한다”면서 “정부는 공급망 실사법, 택소노미, CBAM 등 ESG 제도를 선진국 요구 수준에 부합되게 정비해야 우리 기업의 수출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준희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