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적 영향

정민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러시아유라시아팀 부연구위원
정민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러시아유라시아팀 부연구위원

우크라이나 위기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단기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고강도 대 러시아 제재가 장기화할 경우 우리 경제에도 유의미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 장기화에 대비해 생산성 하락과 교역 및 투자 위축, 글로벌 무역 환경 변화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러시아산 화석연료 수입 제한으로 화석연료 공급 감소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 기업의 생산성이 악화할 수 있다. 2020년 기준 전 세계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에서 러시아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1%, 25% 수준이다. 우리 경제의 화석원료 의존도가 여전히 매우 높다는 점, 생산에서 화석연료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제조업 상품인 점은 우리 실물경제 구조적인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화석연료 수급 차질로 인한 생산성 악화 문제는 대외 충격에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중소기업에 비대칭적으로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수출 중심 제조업 중소기업에 대한 장기적 차원의 선별적 대응 마련이 필요하다.

수출 통제, 금융 제재 등의 고강도 제재가 도입되면 러시아 실물 경제 위축으로 투자 및 교역이 현저하게 줄어들 수 있다. 러시아와 교역액은 제재로 인한 러시아 실물 경제 위축이라는 직접적 영향뿐만 아니라 불확실성 확대, 광범위한 금융제재로 인한 거래비용 증가로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20~2021년 이뤄진 중국 화웨이에 대한 제재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에 대해서도 수출 제한 폭과 미소기준(de minimis rule) 강화 등 규제와 범위를 높여 나갈 가능성이 상존한다. 수출통제리스트(CCL)에 등재된 품목만이 아니라 대러 수출 주력 상품인 자동차, 기계, 플라스틱, 전기제품 등 수출행정규제 상의 최종 소비재에도 FDPR이 적용되면 대러 수출이 급감할 수 있다.

러시아에 진출한 우리 기업은 수출보다 현지 내수 판매에 주력하는데 대러 제재 심화로 러시아 실물 경제에 타격이 예상되므로 내수 위축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예상된다.

불확실성 심화 및 기대수익 악화로 신규 투자가 위축될 수 있으며, 이러한 투자 위축 요인은 중소기업에 더욱 크게 작용할 전망이다. 현재 EU는 러시아 경제가 오랫동안 목표한 산업 다각화에 차질을 초래하고자 AI, 빅데이터, 5G, 양자컴퓨팅 등 디지털 첨단 기술 교류를 제한하는 새로운 경제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 IT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민간 협력은 중소기업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강조된다. 디지털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투자 위축 문제에 대한 대응책이 필요하다.

글로벌 무역환경 변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러시아 실물 경제 위축, 수출 통제로 인한 국가별·지역별 교역구조 변동, 세계 무역 위축 가능성 등 글로벌 통상 환경의 구조적 변화에도 대비해야 한다. EU와 러시아의 경제 협력이 위축되는 한편 러-중, 러-중앙아, 러-이란의 경제협력이 활발해지면서 지역 블록화가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중기적 관점에서 세계 무역 위축으로 인한 경제회복 둔화 가능성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러시아가 SWIFT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러시아와 교역이 원천적으로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거래 절차 증가, 불확실성 확대로 거래 비용 상승은 불가피하다.

장기적인 시계에서 봤을 때 이번 금융제재로 달러 주도의 일극통화체제가 부분적으로 도전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는 2014년 서방의 제재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거래 및 자산·부채 보유에서 탈 달러화를 추진하고 러시아 중앙은행 주도의 새로운 금융결제망(SPFS)을 도입했다. 러시아는 SPFS를 중국의 금융결제망인 CIPS에 연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2019년부터 인도, 이란,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회원국의 금융결제망 통합을 추진 중이다. 특히 러-중, 러-EAEU 경제 협력에서 탈 달러화 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민현 KIEP 부연구위원 mjeong@kiep.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