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대전환 시대, 연구자 중심 과학기술 거버넌스 혁신이 필요하다

최영진 세종대 교수
<최영진 세종대 교수>

세계는 현재 역사상 유례없는 대전환 시기를 맞고 있다.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 위기에 맞서기 위한 에너지 대전환, 디지털 기술의 혁명적 발전으로 인한 산업의 디지털 대전환, 미-중 패권 경쟁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체계 대전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촉발된 사회 경제체제 대전환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 진입하면서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음에도 성장잠재력 둔화, 저출산·고령화, 지역소멸 등 새로운 국가적 난제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대전환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살리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20대 대통령 선거의 주요 후보가 입을 모았던 것처럼 대전환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국가적 의제가 '과학기술 혁신'이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과학기술정책의 패러다임을 모방추격형에서 아무도 가지 못한 길을 스스로 열어 가는 혁신선도형으로 변화시켜야 하며, 정책 주안점은 단기적 수요보다 중장기적 혁신 역량 강화에 있어야 한다. 나아가 과학기술을 경제성장 수단으로만 바라봤던 개발도상국 시각에서 벗어나 글로벌 리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 역할을 재정의하고 국민과 공감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과학기술 거버넌스 혁신이 우선돼야 한다. 과학기술 거버넌스 혁신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과학기술정책 컨트롤타워의 독립성과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기술부총리 제도를 신설해 연구개발에 필요한 예산은 연구자 스스로가 책임과 권한을 갖고 효율적으로 편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재정법을 개정해 과학기술혁신본부가 국가연구개발비 지출한도 설계를 주도하고, 각 부처에 예산 편성 지침을 마련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실질적으로 정책을 개발하고 생산할 수 있도록 현재 구성을 재편하고 조직을 강화해야 한다. 단순한 자문이 아니라 최고권위기관으로서 대통령에게 건의·보고하고 이의 실행 방안을 부처에 요구하는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연구개발 예산 편성에 연구자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는 체제로 전환돼야 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다음으로는 과학기술 투자체계 선진화가 필요하다. 과제 단위 예산 심의를 통한 연구개발지원은 정부 과학기술 투자가 30조원에 이르는 현재에는 효율적이지 않은 제도다. 과제 단위가 아니라 전체 사업 성과를 점검하는 세부 사업 단위 예산 심의로 개편함으로써 세부 사업 내 추진 과제는 부처에서 자유롭게 편성·집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정부가 적시에 연구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할 수 있도록 부처별, 분야별 주요 사업을 지정해서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고 계속사업으로 지원함으로써 주기적 예비타당성조사에 소진되는 인적·물적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연구개발의 타당성과 효과를 측정하는 예비타당성조사제도는 목표가 명확하고 단기간에 많은 연구비를 투입할 필요가 있는 사업(응용, 상용화, 대형연구시설 등)에만 실시해야 할 것이다. 현행 연구개발 사업은 기획, 심의, 예산편성, 공모, 실행 단계를 거치는 데만 2~3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목표지향형 연구 중에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와 같이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경우에는 대응 능력이 현저히 낮다.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 사업이라 하더라도 연구자와 부처가 수시로 적정성 심의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해서 자발적 목표 상향이나 변경이 가능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대전환 시대 과학기술에 기대가 큰 만큼 새로운 정부를 향한 과학기술계의 기대 역시 크다. 모쪼록 정부와 연구자가 힘을 합쳐 연구자 중심 과학기술 거버넌스를 만들어 가고, 이를 기반으로 대전환 시대를 당당하게 헤쳐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최영진 세종대 교수 jini38@sejo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