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온고지신]월성 원전은 보물 창고다

임인철 한국방사선산업학회장(한국원자력연구원 기획평가위원)
<임인철 한국방사선산업학회장(한국원자력연구원 기획평가위원)>

대학 졸업 후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취직했을 때, 제일 먼저 맡은 일은 월성 원자로 핵연료 국산화를 위한 안전성 분석이었다. 우리나라 최초 원자력 기술 국산화에 참여했다는 것은 큰 영광이다. 월성 1호기에 국산 핵연료가 장전된 후 현장 기숙사에서 처음 본 해돋이 장관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런 기억 때문인지 지난 2018년 월성 1호기 영구 정지 결정이 더욱 각별했다.

천연우라늄을 핵연료로 사용하고 중수를 냉각수와 반사체로 사용하는 중수로는 전력 생산뿐만 아니라 여러 보물이 숨겨진 비밀 창고다. 비록 1호기는 영구 정지했지만 남은 3기의 중수로는 아직 기회가 있다.

코발트-60(Co-60)이란 감마선을 방출하는 방사성동위원소가 있다. 이 동위원소는 의료기구, 식품 살균등을 위한 방사선조사 시설에 사용되는데 중수로를 사용하면 대량으로 만들 수 있다. 중수로에서 핵연료가 장전된 노심을 둘러싸고 있는 반사체에는 원자로 출력을 조절하기 위해 철로 만들어진 조절 봉이 있다. 이 조절 봉 재료 성질이 코발트-59와 매우 유사해, 조절 봉 재료를 코발트-59로 대체하면 중수로에서 코발트-60이 만들어진다. 세계에서 중수로를 운전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캐나다, 인도, 중국, 러시아, 루마니아, 아르헨티나 등이 있는데, 이 중 코발트-60을 만들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2019년 현재 코발트-60을 이용한 방사선 처리 분야 세계 시장 규모는 4조4000억원 정도로 연 8.8%씩 성장해, 2030년에는 11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월성 3, 4호기에 코발트-60 생산 시설을 설치하면 세계 시장 10%에 해당하는 코발트-60을 생산할 수 있다. 외화를 절약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수출도 할 수 있어, 몇 년 안에 설치비를 환수할 정도다. 개발도상국은 일반적으로 원자력 기술 도입에 앞서 방사선 기술을 도입한다. 조사시설을 수출한다면 이는 곧 원자력 기술 수출의 첨병이 된다. 방사선 멸균 서비스를 통해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효과는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 만큼 명확하다. 코발트 취급시설을 월성 인근에 설치하면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일석사조 정도 효과다.

그 뿐인가. 월성원자로에서는 삼중수소가 만들어진다. 중수가 원자로에서 중성자를 흡수해 만들어지는 삼중수소는 미래 인류를 위한 청정에너지원인 핵융합로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 월성에 저장되어 있는 삼중수소의 값어치가 무려 최소 3000억원이고 3기의 중수로에서는 매년 약 150억원어치 삼중수소가 만들어진다.

삼중수소가 붕괴하면서 생기는 헬륨-3라는 핵종도 아주 귀한 재산이다. 삼중수소의 5% 정도는 자연스럽게 헬륨-3로 변환된다. 주로 의료, 화물용 검색기 및 연구에 사용하는데, 검색기 분야는 미국 9·11 테러 이후 폭발적으로 수요가 증가했다. 덩달아 헬륨-3도 품귀현상이 심해져 부르는 게 값이다. 헬륨-3로 방사선계측기를 만들면 그 부가가치는 훨씬 증가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이런 역량을 가진 기업이 많다.

지난 5년간 탈원전 정책으로 원자력 산업 인프라가 많이 훼손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중 가장 약한 고리인 중소기업이 제일 어려운 형편이다. 앞서 얘기한 '보석'을 캐는 프로젝트는 발전소 건설보다 규모는 훨씬 작지만, 상대적으로 빨리 진행할 수 있다. 한시가 급한 중소기업들의 숨통을 틔우는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이다. 원전을 전력원으로만 생각하는 틀에서 벗어나자. 새로운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보물 창고가 될 수 있다.

임인철 한국방사선산업학회장(한국원자력연구원 기획평가위원) iclim@kae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