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현 교수의 글로벌 미디어 이해하기]〈57〉미디어판 흔든 넷플릭스·CNN+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인터넷과 디지털 혁명이 미디어산업 변화의 중심에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때문에 미디어산업은 어느 산업보다 더 심한 격랑의 시기를 겪고 있다. 미디어산업을 언급할 때마다 평소에는 자주 접하지 않는 단어인 빅뱅, 쓰나미, 혁신, 와해 등으로 설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격주마다 기고를 하는데 미디어산업 판을 크게 흔든 두 사건이 이번 2주 사이에 일어났다. '글로벌 미디어 이해하기' 연재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 있는 일이다. 하나는 출시한 지 1개월 만에 서비스 중단을 선언한 CNN플러스(CNN+)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가입자가 10년 만에 처음 순감한 넷플릭스다.

지금까지 오랜 기간 뉴스업계 인기 인물을 비롯해 약 700명 가까이 채용하면서 3억달러 이상 투자했고 향후 2년 동안 7억5000만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던 CNN+가 서비스 출시 33일 만에 중단을 선언했다. 서비스 출시 이후 이렇게 짧은 기간에 서비스를 중단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것도 CNN이라는 뉴스에서의 최고 브랜드면서 콘텐츠업계 최고의 하나인 워너미디어가 스트리밍 전쟁에 참여했음에도 서비스를 갑자기 접은 것이다. 언론은 당연히 충격적인 사건으로 묘사했다. 워싱턴포스트는 “CNN+의 갑작스러운 중단은 최근 미디어산업에서 일어난 가장 크고 가장 비싸게 치른 실패 가운데 하나”라고 규정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비스 중단이 디스커버리와의 합병 승인 직후 새 경영진에 의해 결정됐다. 그 이유와 관련해 여러 설이 있는 듯하다. 표면적으로는 재방송, 토크쇼, 뉴스로 구성된 CNN이 지금의 스트리밍 서비스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결론이었다. 'CNN은 세계 최고 저널리즘 조직이기에 사실에 근거한 저널리즘과 뉴스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것'이라는 첨언도 나왔다. CNN이 추구해야 할 본질에 집중하겠다는 취지다.

넷플릭스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가입자가 20만 순감하고 다음 분기에는 200만 정도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으로 주가가 최고치 대비 350% 가까이 폭락했다. 700달러에서 200달러로 수직 하강이다. 아직 2억2000만 이상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음에도 시장 반응은 상상을 넘어 가파른 하향곡선을 그렸다.

가입자 감소는 단지 숫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 듯하다. 넷플릭스는 스트리밍으로 기존 전통 레거시 미디어산업을 와해시키며 가입자를 증대, 미디어산업에서 혁신을 일으킨 기업이었다.

그러나 1분기 가입자 감소와 재무 상황은 회사 성장 가능성뿐만 아니라 나아가 장기적 측면에서 스트리밍 비즈니스 모델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디즈니, 파라마운트, 워너브라더스와 같은 전통 글로벌 미디어 그룹이 심혈을 쏟고 있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사업에도 해당된다.

세계 OTT 시장 사이즈는 10억명 광대역인터넷 가입자가 아니라 프리미엄 콘텐츠에 대한 지불 능력이나 지불 의사를 고려하면 약 4억명 정도라는 분석이 있다. 계정 공유를 포함하면 미국 넷플릭스 가입자는 거의 포화상태라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디즈니플러스(디즈니+) 역시 얼마 전에 기존 요금제 이외 저렴한 가격으로 광고 기반 서비스 출시 계획을 발표했다. 넷플릭스도 이번 실적발표를 통해 이제는 심각하게 광고 기반 서비스에 대해 고려할 수 있다고 공식화했다.

스트리밍으로 레거시 미디어를 와해시킨 넷플릭스로 인해 전통 미디어기업도 OTT 비즈니스에 심혈을 쏟고 있는 이때 넷플릭스가 광고모델에 기초한 레거시 미디어를 따라갈 수 있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넷플릭스가 독식해 온 한정된 영토를 이제는 거대 미디어 사업자 간에 나눠 먹는 시대가 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CNN+와 넷플릭스로 놀란 미디어판은 국내 시장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아직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모르지만 OTT 비즈니스 열풍에 뒤처지지 않으려 많은 투자로 준비한 서비스를 다시 본질에 충실하겠다며 중단하는 결단이 주는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K-OTT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이 시점에도 K-OTT를 품을 수 있는 영토의 사이즈와 현재 한정된 국내 시장에서 각축을 벌이는 OTT 경쟁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한다.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khsung200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