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DX문화살롱](16)원본을 뛰어넘는 가치의 발견

[이상직 변호사의 DX문화살롱](16)원본을 뛰어넘는 가치의 발견

진짜는 무엇이고 가짜는 무엇일까. 온라인은 오프라인을 모방한 가짜일까, 새로운 창조일까. 실제 공간을 베낀 메타버스는 뭘까. 우리도 최초로 인간 유전자를 지닌 조상을 원본으로 복제된 사본인지 모른다. 하느님이 자신의 형상을 본떠 인간을 만들었다면 신의 복제물일 수도 있다. 세상의 주인인양 으스대는 것을 보면 그럴지 모르겠다. 인간을 원본으로 한 인공지능은 복제된 사본에 그칠까 아니면 인간을 넘어설까?

독일 철학자 발터 베냐민은 '아우라'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원본이 간직하는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신비하고 영적인 분위기를 말한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보자. 전시회를 찾은 사람은 벽면 가득 큰 화면에 한두 가지 색깔로 채워 넣은 그림을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스마트폰으로 봐도 눈물이 날까? 쉽지 않다.

기술 복제 시대에는 인터넷, 스마트폰을 열면 수많은 복제를 거친 사본이 돌아다닌다. 아우라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교과서나 교양서적에 들어 있고, 디지털로 복제돼 인터넷을 떠돈다. 책받침에 프린트된 모나리자에 감동하긴 쉽지 않다. 복제된 사본을 많이 접하면 실제 원본을 보더라도 감동이 적다. 누군가 말할지도 모른다. “같은 그림이 우리 집에도 있는데, 그게 더 예뻐”

기술 복제 시대에 복제한 사본이 원본과 다른 새로운 아우라를 창조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 원본의 복제에 그치지 않고 대중화되고 새로운 가치를 더할 수 있을 때 또 다른 아우라가 만들어질 수 있다. 누구나 혐오하는 쥐는 디즈니에 의해 눈길을 사로잡는 미키마우스가 됐다. 창작의 원본은 오직 하나일까? 그것도 아니다. 앤디 워홀은 중국의 마오쩌둥, 마릴린 먼로, 통조림 캔 등 다양한 대상을 복제하고 색깔을 입혀서 예술로 승화시켰다. 단순한 복제를 넘어서고 원본을 넘어섰다. 새로운 아우라다.

무엇이 원본인지 따지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 대체불가토큰(NFT)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공간에는 많은 디지털 자산이 있다. 글, 사진, 그림, 캐릭터, 짧은 동영상 등 가치가 있다면 모두 디지털 자산이다.

무한 복제가 가능하고 원본과 사본을 구별하기 어렵다. 그러나 NFT를 이용해 디지털 자산에 고유 코드를 넣으면 위·변조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원본을 블록체인에 등록해 원본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증명할 수 있다. 화가 A가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 있다. 디지털파일로 만들고 블록체인기술로 소유자와 거래 이력을 NFT화했다고 하자. 고액을 주고 NFT를 구입하는 누군가 있겠지만 인터넷에서 쉽게 다운로드해 볼 수 있다. 디지털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화가 A가 물감으로 그린 그림을 불태웠다고 하자. 그 NFT의 가격은 올라갈 가능성이 짙다. 그러나 그것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전히 나는 인터넷에서 다운로드받은 그 그림을 볼 수 있다. 굳이 소유권을 가질 필요가 없다. NFT가 성공하려면 원본과 분리돼 그 자신의 독창적 가치를 찾아야 한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현실의 사물을 그대로 베낀 이미지 또는 기호가 현실에 있는 사물을 넘어 대체하는 현상을 시뮬라크르라고 했다. 실제의 사물이 없어지거나 사라지면 베낀 이미지가 더 진짜 같은 역할을 한다. NFT는 위·변조가 걱정되는 미술시장 등에서 꽃피울 수 있다. 무한 복제가 우려되는 메타버스에서도 저작권자의 권리가 보호되므로 거래가 활발해질 것이다. 다만 NFT의 지나친 열풍이 투기를 부추기고 시장을 왜곡할까 걱정이다. 그것은 NFT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 NFT를 건강하게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원본을 뛰어넘은 아우라는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만든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저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