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디지털 헬스케어 수가를 새 정부에 바란다

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대표
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대표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새 정부에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바로 수가다. 특히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에 특화된 새로운 수가 기준이 필요하다. 이것 없이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인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진흥책은 모두 미봉책일 뿐이다. 지난 수년 동안 업계에서는 이를 수없이 요구해 왔지만 실질적인 진전은 없었다. 새 정부가 보험 수가라는 업계의 오랜 숙원 하나만 해결하더라도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전례 없이 성공적인 정부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는 '기승전수가'라는 관용구가 있다. 한국과 같은 단일 의료 보험 국가에서는 새로운 의료기술을 개발해 사업화하는 경우 별도로 급여가 책정되지 않으면 시장 진입 방법이 극히 제한된다. 더욱이 국영 보험은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 도입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기술 혁신 성과가 국민에게 적시에 전달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더욱이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 혁신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면서 괴리는 더 커지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혁신 따른 가장 큰 변화는 의료기기 범주 확장이다. 과거 의료기기는 체온계, 혈압계 등 주로 하드웨어였다. 하지만 이제 의료기기는 소프트웨어로 확장되고 있다. 흉부 엑스선 영상을 판독해서 결절을 찾아주거나 병리 영상을 분석해 암 진단을 돕는 인공지능이 대표적이다. 더 나아가 최근 앱, 게임, VR 등의 소프트웨어로 환자를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도 국내외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혁신 기술이 식약처 허가를 받더라도 시장 진입은 요원하다. 바로 수가 때문이다. 한국에는 세계적 기술력을 가진 의료 인공지능 회사들이 있지만 이들 사업의 실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의 하나가 역시 보수적이며, 기술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수가 기준임을 부인할 수 없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의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수가의 필요성을 지난 몇 년 동안 주장하고 있다. 기존 한국의 수가 기준은 하드웨어 의료기기를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과 디지털 치료제 등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개발 기간과 비용이 적으며, 업데이트가 더 잦다는 차이가 있다.

더 나아가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사용하면 데이터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 데이터를 활용해서 성능을 더 높일 수도 있고, 가치 평가를 더 정확하게 할 수도 있다. 데이터에 기반해 보험금을 지불할 것인지, 얼마나 지불할 것인지, 시장에서 퇴출할 것인지도 결정할 수 있다. 이는 기존과 완전히 다른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에 특화된 수가 기준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세계 각국에서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 혁신을 받아들이기 위해 파격적으로 지불 구조를 개선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혁신의료기기에 대해 인허가만 받으면 4년 동안 메디케어 수가를 무조건 주는 방안을 고려했으며, 독일에서는 이미 2020년부터 디지털 헬스케어 앱이 허가받는 즉시 12개월 동안 수가를 자동으로 부여한다. 그 결과 30개가 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가 이미 수가를 받고 있다. 그에 비하면 여전히 한국 수가 제도는 이 같은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에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한국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길 원하고 그 핵심인 디지털 헬스케어 혁신을 원한다면 이 분야에 대한 정책적 우선순위를 높이고, 가려운 곳을 긁어 달라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이번 대선에서도 4차 산업혁명은 핵심 공약이었다. 하지만 정작 글로벌에서 인정받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들은 여전히 현장에서 고사하고 있거나, 외국에서 각자도생으로 살길을 찾고 있다. 부디 새로운 정부에서는 이런 업계의 오랜 염원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대표 yoonsup.choi@dhpartners.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