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비대면 진료 또 후퇴?' 약사 단체 반대 이유는

"동네 약국 피해" 약 배송에 반발
"약국 디지털화" 플랫폼 업계 기대
권역별 배송 등 절충안 급부상도

[스페셜리포트] '비대면 진료 또 후퇴?' 약사 단체 반대 이유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호적 환경이 조성되던 비대면 진료 제도화 문제가 약사들 반대에 부딪혔다. 그간 원격의료에 반대입장이던 의사들이 코로나로 확인된 비대면 진료 필요성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인 반면에 약사 단체들은 대정부 투쟁 등 거센 반발에 나서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약국 '무한경쟁' 우려…강력 반발

약사 단체들이 반대하는 구체적 대상은 약 배송이다. 다만 비대면 진료가 합법화되면 비대면 처방과 약 배달이 한꺼번에 이뤄질 수밖에 없는 만큼 비대면 진료 제도화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약 배송 반대의 가장 큰 이유는 '국민건강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대한약사회는 지난달 성명에서 “보건복지부가 2020년 2월 공고한 '한시적 비대면 진료 허용방안' 고시는 질병 치료와 상관없는 증상까지 무제한으로 처방을 허용해 의료쇼핑을 부추기고 보건의료 체계 근간을 뒤흔들었다”고 주장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난립하고 불법·과장광고를 통한 환자 유인행위가 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온라인 시스템을 구축·제공하는 업체에 불과함에도 의료인처럼 행세하며 △온라인과 대중광고 매체를 통해 남성 성기능 약, 다이어트약, 사후피임약, 다이어트 등 불법 의료광고를 서슴지 않는다고 밝혔다.

2017년 12월 열린 대한약사회 궐기대회. 대한약사회는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임원과 회원 등 1100여명이 참가한 집회를 통해 편의점 판매약 확대 반대 전국 임원 궐기대회를 열었다. 사진=전자신문DB
2017년 12월 열린 대한약사회 궐기대회. 대한약사회는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임원과 회원 등 1100여명이 참가한 집회를 통해 편의점 판매약 확대 반대 전국 임원 궐기대회를 열었다. 사진=전자신문DB

반대 배경에는 또 약국 피해가 있다. 한 개국 약사는 “약국은 근처 병원이나 동네를 기반으로 나름 영업지역이 구분돼 있다”면서 “지금도 기업형 약국 공세가 거센데, 플랫폼이 개입해 무분별한 약 배송이 가능해지면 이 같은 시스템이 완전히 깨진다”고 말했다. 플랫폼을 통해 무한경쟁에 내몰리게 되면 지역 약국이 피해를 입고 이는 곧 지역 보건 의료 훼손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실제로 대한약사회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 불법 행위로 △제휴 약국을 모집하기 위한 의료기관 처방전 몰아주기 △1일 처방전 일정 건수 보장을 지적했다. 플랫폼이 자사 영향력 확대를 위해 부적절한 경쟁을 유발한다는 주장이다.

◇비대면 진료 다시 무산?…권역별 배송 등 절충안 떠올라

플랫폼 업체는 비대면 진료 서비스 완성도를 위해 약 배송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비대면 진료 업계 관계자는 “진료는 비대면으로 보고 약은 오프라인에서 수령하는 것은 의료 서비스 접근성 측면에서도 후진적”이라면서 “오히려 지금이 플랫폼 업체가 약국 디지털화를 도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병원과 약국, 소비자를 잇는 기반을 플랫폼이 제공함으로써 상호 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일부 업체는 이에 약국에 전사자원관리(ERP) 솔루션을 공급하는 사업을 기획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그렇다면 비대면 진료 제도화는 또 무산되는 것일까. 약사 사회 전체가 비대면 진료와 약 배송에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관련 업체 관계자는 “자기 약국을 가지지 못한 페이(고용)약사의 경우 약 배송과 비대면진료 등 의료계 디지털 전환이 기회라고 보는 경우도 꽤 있다”고 말했다.

기존 오프라인 거점을 확보하지 못한 입장에서는 '디지털 약국'이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반대 목소리에 가려져 있지만 약 배송지지 의견도 시간이 지날수록 구체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역별로 약 배송 가능지역을 나누고 약국 디지털화를 지원하는 방안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예를 들어 경쟁이 심한 대도시에서는 약 배송 가능지역을 동 단위로,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읍면 단위 등은 배송 제한을 풀자는 것이다. 배송 수수료 등을 약국에 부담시키지 않는 것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 약 배송 비용은 플랫폼 업체와 소비자가 부담하고 있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어차피 현재 경쟁구도에서는 플랫폼이 약국에 수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면서 “플랫폼 업체가 수수료를 부담하는 사업구조를 만들면 지금보다 약사들을 설득시키기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약사 단체 반발은 의사 단체도 주시 중이다. 플랫폼은 비대면 진료 서비스 완성도를 위해 '성분명 처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의사가 특정 약품을 지정하지 않고 성분명만 표시해 처방하면 약국에서 해당 약품을 추천하는 구조다. 이는 비대면 진료 업계와 약업계 간 의견이 일치하는 사안이다. 다만 이 같은 성분명 처방이 추진되면 의사 단체 반발이 예상된다. 제약 업계를 향한 의사 영향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장지호 원격의료산업협의회 회장은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 시국을 이겨낸 보건 당국의 성과이자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새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라면서 “세계적으로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산업계는 지난 2년간 쌓아온 1000만여건의 비대면 진료 데이터를 기반으로 직역 단체와 지속 소통을 추진하며 우려 해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