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핫이슈]블랙홀 비밀이 풀린다

세계 80개 기관·300명 참여 EHT 연구팀
우리은하 '궁수자리 A' 촬영 공개
M87 블랙홀보다 2000배 가까운 거리 위치
상대성 이론 뒷받침 결정적 증거로 기대

궁수자리 A 블랙홀 이미지. 중심부 검은 부분은 블랙홀(사건의 지평선)과 블랙홀을 포함하는 그림자, 고리의 빛나는 부분은 블랙홀 중력에 의해 휘어진 빛이다. 사진=EHT
궁수자리 A 블랙홀 이미지. 중심부 검은 부분은 블랙홀(사건의 지평선)과 블랙홀을 포함하는 그림자, 고리의 빛나는 부분은 블랙홀 중력에 의해 휘어진 빛이다. 사진=EHT

아인슈타인 상대성 이론과 간접 관측을 통해서만 그 존재를 가늠했던 블랙홀의 비밀이 한 꺼풀씩 벗겨지고 있다.

세계 80개 기관, 300명이 넘는 연구진이 참여하고 있는 사건지평선망원경(EHT) 연구팀은 지난 12일 우리은하 중심에 위치한 초대질량 블랙홀 궁수자리 영상을 포착한 결과를 공개했다.

과학사상 첫 블랙홀 이미지 확보 3년 만에 이번엔 지구와 더 가까운 곳에 있는 블랙홀의 시각적 증거를 확보하면서 또다시 획기적 우주 관측 역사가 이뤄진 것이다.

지난 2019년 4월 연구팀은 지구에서 5500만광년 떨어진 은하 M87 중심부 블랙홀 촬영에 성공하면서 인류는 처음으로 블랙홀 실제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블랙홀이라는 존재는 상대성 이론을 바탕으로 학술적 추측을 통해 빛조차 탈출할 수 없는 강력한 중력을 지닌 검은 구멍으로 정의됐다. 빛까지 모두 흡수한다는 이유로 직접 그 존재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첫 관측 이미지를 얻기 전까지 우리가 본 블랙홀 이미지는 이 같은 이론을 바탕으로 한 예측 모델뿐이었다.

연구팀이 이번에 공개한 블랙홀 이미지는 앞서 공개했던 M87 블랙홀보다 더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로 다가온다.

궁수자리 A 블랙홀은 지구에서 약 2만7000광년 떨어진, M87 은하와 비교해 2000분의 1밖에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그러나 질량이 태양의 430만배로 65억배에 달한 M87 블랙홀보다는 훨씬 작은 존재다.

관측 결과는 놀라웠다. M87 블랙홀보다 질량이 작으면서도 지구와 거리가 가까워서 M87 블랙홀과 관측된 크기나 모양이 비슷했다.

과학계는 관측 크기와 모양이 비슷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3년 전 처음 포착된 M87 블랙홀과 궁수자리 A 블랙홀 모양이 유사하다는 점은 상대성 이론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로 작용, 상대성 이론이 실증된 것이다.

궁수자리 A 블랙홀 실제 이미지 관측은 상대성 이론 실증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번 관측을 계기로 이미 연구팀은 블랙홀 주변 전파 방출 기원으로 보이는 부착 흐름을 분석하는 이론을 세우기 시작한 상태다. 이는 은하 형성과 진화 과정을 밝히는 것은 물론 상대성 이론에 대한 정밀한 검증까지도 기대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외에도 초대질량 블랙홀 중 가장 큰 편인 M87 블랙홀과 가장 작은 편인 궁수자리 A 블랙홀 영상을 비교·분석해 중력이 극단적으로 다른 상황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더욱 자세히 테스트해 볼 수 있다.

이 같은 과학적 쾌거에는 지난 M87 블랙홀 관측과 마찬가지로 EHT 역할이 가장 컸다. EHT는 전 세계 곳곳 전파망원경을 연결해 지구 크기 가상 망원경을 만들어 블랙홀 영상을 포착하는 국제협력 프로젝트다. 이번 관측은 모두 8개 전파망원경을 연결해 하나의 망원경처럼 운용하는 초장기선 전파간섭계(VLBI) 기술을 활용, 망원경 민감도와 분해능을 높였다.

이 프로젝트에는 우리나라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천문연구원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 3기가 모두 참여해 궁수자리 A 블랙홀 구조가 원형에 가까움을 확인했으며 이로부터 블랙홀 부착 원반면이 지구 방향으로 향하고 있음을 제시했다. 천문연 소속 등 국내 연구자와 해외 거주 한국인 연구자들은 EHT 주요 망원경인 칠레 아타카마 밀리미터·서브밀리미터 전파간섭계(ALMA)와 하와이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망원경(JCMT) 운영에 참여해 이번 관측과 자료처리, 영상화에 이르는 다양한 과정을 수행했다.

천문연은 앞선 ALMA 및 JCMT 망원경 공동 운영을 통한 참여를 넘어 평창에 구축 예정인 네 번째 전파망원경까지 더해 이번 관측 이후 후속 과제에 직접 참여하기 위한 준비도 하고 있다.

이인희기자 leei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