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대통령의 경제 메시지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출근길 메시지는 '아 정권이 바뀌었구나'를 생각하게 하는, 가장 신선한 풍경이다. 이전 대통령이 행사장에서도 기자들과 눈길 한 번 제대로 마주치지 않고, 간담회에서조차 먼 발치에서 취재하던 것과는 확실히 달라졌다는 게 현장 기자들의 반응이다. 후보자 및 당선자 시절에 거론한 국민과의 소통도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뤄진 중소기업인 간담회, 호국영웅초청 간담회 등으로 정착된 분위기다.

윤 대통령은 취임 40여일이 지난 가운데 16차례 출근길 메시지를 냈다. 그 사이 경제 상황을 언급하는 질문에는 유독 위기를 강조했다. 지난달 27일 여야 간 추가경정예산 합의가 불발되자 “자영업자는 숨 넘어 가는데… 안타까워”라며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추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달 2일 지방선거가 끝난 후에도 “경제 활력이 시급하다. 지방정부와 함께 헤쳐 나가겠다”고 했다. 3일 지방선거 여당 승리 관련 질문에는 “집에 창문이 흔들리고 마당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거 못 느끼나”면서 “경제위기가 태풍 목전이다. 지방선거 승리를 입에 담을 상황이 아니다”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의 회동 여부에 대해서도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데 여야가 따로 있겠나”고 밝혔다.

14일엔 “물가, 공급 사이드 조치 다 취하려 한다”, 15일 화물연대와의 협상 타결에는 “조마조마하다. 경제위기 살얼음판”이라고 했다.

취임 이후 줄곧 경제 위기를 강조한 윤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세계 경제 상황과 맞물려 설득력이 높았다.

실제 세계 각국은 물가 상승, 경기 침체, 공급망 불안 등을 동반한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 숨을 죽이고 있다. 경제를 선행하는 세계 증시나 환율, 채권 등의 움직임은 급변했다. 우리나라도 복합위기 상황에 몰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에선 제롬 파월 연방준비회 이사장이 금리를 0.75%포인트(P) 끌어올리며 더욱 금융 상황을 얼어붙게 하고 있다. 미국과의 금리 역전 가능성도 짙어졌다.

다만 경제 상황이 급박하다는 윤 대통령의 출근길 메시지와 다르게 정부와 여당의 움직임은 한가해 보인다. 기획재정부가 이날 발표한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은 비상시 경제 대응책과는 거리가 먼 청사진에 그쳤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지만 법인세 인하폭과 시기나 어떤 규제를 어떻게 철폐하겠다는 내용은 없었다.

전날인 당정대 회의에서도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현재 위기가 전 정권의 잘못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규제개혁을 하겠다고 했지만 뚜렷한 로드맵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비상시국에 대통령 내외의 주말 나들이 모습도 한가롭게만 보인다.

경제 선행지표로 불리는 증권시장은 연일 전저점을 돌파하고 환율은 오름세다. 최근 외국인 매도세는 금융위기를 방불케 한다. 유가는 유류세 인하에도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수출 중심 국가다. 해외 의존도가 큰 만큼 외환 흐름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 경제 상황은 남 탓 할 때가 아니다. 치솟는 유가와 물가를 어떻게 잡을지, 흔들리는 금융시장을 어떻게 안정시킬지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선 해외 자금 유출 흐름도 점검해서 금리 인상 여부를 빠르게 판단하고, 공급망 상황을 어떻게 풀 건지를 제시해야 한다. 또 어떤 규제를 어떻게 풀지 빠르게 답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위기를 강조하지만 정부나 여당이 내놓는 대책이 위기 상황에 맞지 않다면 위기를 과장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아니면 대통령의 메시지가 부처나 여당에 잘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경제 수장의 표정, 넥타이 색깔 하나도 큰 신호가 되는 게 경제다. 말 한마디에 서민들은 긴장하고 투자자는 자금을 회수한다. 대통령이 위기를 과장했다면 메시지를 정제해야 하고, 실제 경제가 태풍 목전 위기라면 정부와 여당은 대통령의 메시지대로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나 투자자가 정부를 신뢰하고, 비로소 태풍 앞에 놓인 경제를 안정화시킬 수 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