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1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지축을 흔들며 날아올랐다. 1단, 2단 추진체와 페어링을 단계적으로 분리하고 3단이 목표 궤도에 도착했다. 이어 누리호가 싣고 간 성능검증위성이 궤도에 무사히 내려앉았다.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관제실에서도, TV로 지켜보던 시민들 사이에서도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한국이 우주 발사체 개발과 우주 수송, 위성 운용 능력을 자체적으로 확보했음을 확인한 순간이다. 우주 연구개발 30년 만에, 한국은 세계 7대 우주 강국으로 거듭났다.
◇1차 발사 실패 딛고 일어선 누리호
누리호는 우리 기술로 로켓을 만드는 장기 연구개발 과제의 결과물이다. 1.5톤급 실용위성을 싣고 고도 600~800㎞ 사이 지구저궤도에 투입할 수 있는 발사체다. 2010년부터 2023년까지 1조9572억원 예산이 들어갔다. 2013년 발사한 나로호는 러시아 기술에 크게 의존했지만 누리호는 엔진 개발부터 주요 부품 제작, 조립, 발사대까지 모두 국내 연구소와 기업 연구진의 힘으로 탄생한 진정한 '한국형' 발사체다.
누리호는 지난해 10월 1차 시험 발사했다. 애초 난제로 여겨졌던 1, 2단 분리나 페어링 분리는 성공적으로 수행했으나, 3단 엔진 연소가 예정보다 일찍 종료되면서 탑재된 위성모사체가 궤도에 안착하는 데 필요한 초속 7.5㎞의 속도를 얻지 못하고 추락했다. 마지막 단계에서 안타깝게 실패한 것이다. 설계 오류로 추진제로 쓰이는 산화제를 담은 탱크에 균열이 생겨 산화제가 누출된 것이 문제였다.
◇누리호 2차 발사, 숨 가빴던 일주일
누리호 2차 발사는 1차 발사의 실수를 철저히 되짚어보며 만반의 준비를 거쳤다. 1차 발사 때 1, 2단 및 페어링 분리 등 기술적 난제를 무리 없이 수행했고 설계 오류도 보완했기에 2차 발사에 대한 기대감은 높았다. 그러나 로켓 발사에서 예측 못 한 기술적 문제는 언제든 생길 수 있고, 날씨 등 외부 여건도 도와줘야 해서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2차 발사는 두 번 연기되며 모두의 마음을 졸였다. 누리호는 발사 하루 전인 6월 14일 발사장으로 미리 이송해 일으켜 세운 후, 연료를 주입하고 전원을 공급하는 설비를 설치하고 각종 점검을 시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당일 현지에 강한 바람이 불면서 작업 안전을 위해 이송과 발사를 하루씩 늦췄다. 풍속은 안전 발사를 위한 기준인 초속 15m에는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47m 높이의 발사체에서 작업을 해야 하고 이 정도 높이에선 지표보다 바람이 거세게 분다는 점을 고려했다.
이튿날 이송은 무사히 이뤄졌다. 그러나 기립 후 점검 과정에서 다른 문제가 생겼다. 산화제 탱크에 설치되어 산화제 수위를 측정하는 센서에 오류가 감지된 것이다. 산화제 양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면 발사체의 속도나 운행 시간을 예측할 수 없다. 결국 누리호를 다시 눕혀 밤늦게 조립동으로 돌려보내 전면적인 점검을 해야 했다. 발사 일정도 불투명해졌다. 최악의 경우, 누리호의 1단과 2단을 분리해 센서를 교체하고 재조립해야 할 판이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 연구진은 서둘러 점검하고, 해결책을 고민했다. 센서 내부 전기 코어부가 문제임을 확인했고 단 분리를 하지 않고도 사람이 발사체로 들어가 문제 부품만 교체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이틀 만에 6월 21일로 새 발사 일정을 잡을 수 있었다.
이때는 장마가 다가오고 기상 변동성이 큰 시기라 우려도 컸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쾌청한 날씨를 보였고, 누리호 2차 발사는 깔끔하게 성공했다. 3단 위성이 의도한 궤도에 정확히 들어섰고 성능검증위성도 무사히 궤도에 올려놓았다. 성능검증위성의 마지막 임무는 국내 대학에서 개발한 큐브위성을 분리하는 것이다. 이 큐브위성들은 지난 2019년 큐브위성 경연대회에서 선정된 조선대, 카이스트, 서울대, 연세대의 4개 대학팀이 직접 제작하고 개발한 꼬마 위성이다. 지난 6월 29일 조선대팀의 큐브위성이 처음으로 분리에 성공, 일부 교신에 성공한 상태다. 각 큐브위성은 지구 대기 관측, GPS 데이터 수집, 미세먼지 모니터링 등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민간 기업 뛸 우주 독립 시대 열다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독자적으로 우주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지금까지 위성을 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발사체에 의존해야 했다. 발사국 사정에 따라 일정이 변경돼 원하는 시점에 쏘지 못하는 등 문제가 있었다. 발사체 기술이 없으면 계속 확대되고 있는 민간 중심 우주 산업, 이른바 '뉴 스페이스' 참여에도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3t 이상 대형 위성이나 우주선을 우주에 내보내는 기술은 확보하지 못했다. 스페이스X 같은 로켓 재활용 기술도 개발해야 한다. 세계 7대 우주 강국이 되었지만, 아직은 6위와 거리가 먼 7위인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원할 때 우리가 필요한 것을 스스로 우주로 올릴 수단을 확보한 것은 마치 0과 1처럼 작지만, 근본적인 차이를 만들어낸다.
또 누리호 개발에는 국내 300여개 기업이 참여했다. 누리호의 심장인 75톤급 액체 엔진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터보펌프는 에스엔에이치, 탱크는 이노컴, 전체 체계 완성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발사대 개발은 현대중공업이 담당하는 등 모든 기술, 모든 부품에 우리 기업과 연구진의 땀이 뱄다.
이렇게 쌓인 기술과 경험은 앞으로 우리나라가 위성 발사 대행 등 민간 우주 산업에서 입지를 만들고, 달 탐사 등 도전적 우주 개척에 나서는 기반이 될 것이다. 국제 우주 외교 무대에서도 목소리를 높여 우주 시대의 새 판을 짜는 데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글: 한세희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