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가전 생존법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됐는데도 매장 방문 손님은 주말에도 10팀이 안 됩니다. 작년보다 손님이 줄어든 것 같아요.” 수도권의 대형 가전 유통 대리점 관계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하소연한다. 외부 활동 제약이 풀렸지만 고객이 오프라인 매장을 찾지 않으면서 매출 걱정이 늘었다.

고객이 가전 유통점에서 제품을 둘러보고 있다.(자료: 전자신문 DB)
고객이 가전 유통점에서 제품을 둘러보고 있다.(자료: 전자신문 DB)

가전 유통업계는 4월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됨에 따라 매장을 리모델링하고 특별 프로모션을 실시했다. '그랜드 오픈' 걸개를 내걸고 매장 직원까지 충원해서 오프라인 마케팅에 나섰다. 3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매장은 한산하다. 온라인 구매에 익숙해진 고객이 매장 방문을 꺼리거나 가격·제품 확인차 들를 뿐 정작 구매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하기 때문이다. 여행, 취미 등 야외활동이 이어지면서 가전 구매가 줄어든 탓도 있다.

2년 넘게 코로나19로 유례없는 성장을 거듭한 가전 업계는 고민이 깊다. 시장 호황이 끝을 향해 달려가기 때문이다. 야외활동으로 수요도 줄었지만 소비심리 하락이 크다. 금리 인상과 물가상승 등 거시경제 압박으로 지갑 열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이미 가전 교체가 상당 부분 이뤄진 데다 필수재가 아닌 고가의 상품을 꾸준히 구매하기는 어렵다.

상반기 실적 발표를 앞둔 삼성과 LG전자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두 회사는 코로나 시국에서 매 분기 실적이 새 역사를 쓸 정도로 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곳곳에서 부정적인 지표가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DSCC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2분기 재고 회전일수는 평균 94일로, 예년보다 약 2주 늘어 역대 최장기간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고 회전일수는 가전 재고가 매출로 발생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으로, 이 기간이 길어질수록 기업의 부담이 늘어난다. 지난 1분기 삼성전자의 재고자산은 47조590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5.4% 늘었다. LG전자 역시 같은 기간 재고자산은 10조2143억원으로 27.7% 증가했다.

통상 가전 업계는 상반기보다 하반기를 기대한다. 9월 이사 시즌과 연말 대형 유통 행사가 이어진다. 올해는 11월 카타르 월드컵에 이어 12월 글로벌 유통 대전이 연달아 진행된다. 그럼에도 소비자 지갑이 얼마나 열릴지는 미지수다.

수요 확대를 위해서는 마케팅 투자를 강화해야 하지만 인플레이션으로 효과를 장담하지 못한다. 우크라이나 사태,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비용 절감 압박도 심해진다. 대외 악재에도 삼성, LG 등 가전 제조사의 상반기 매출은 역대급이 될 공산이 높다. 프리미엄 제품 판매에 집중하면서 수요 감소를 방어한 데다 꾸준히 신(新)가전을 출시하면서 새 시장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다르다. 수요 둔화 상황에서 소비자 요구를 반영한 신 가전 개발과 판매 모델 다각화, 서비스 영역과 접목 등 새로운 시장을 여는 노력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