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인 미디어]태아 생명과 여성의 선택 사이 '레벤느망'

왓챠 익스클루시브 영화 레벤느망 포스터
왓챠 익스클루시브 영화 레벤느망 포스터

태아 생명권과 여성 선택권 중 무엇이 우선할까.

지난 6월 24일 미국 연방 대법원이 1973년 임신중절을 합법화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례를 폐기하며 혼란이 격화되고 있다. 당장 미국 내 주별로 임신중절 규제가 달라진 만큼 보수적인 주에서는 연방 판례로 확립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박탈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영화 '레벤느망'은 임신중절과 관련해 고통받는 한 여성을 그렸다.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아니 에르노 자전적 고백록 '사건'이 원작이다. 예기치 않은 임신으로 촉망받던 미래를 빼앗긴 대학생 '안'이 금기인 임신중절을 선택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 '노매드랜드' 클로이 자오 감독 등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영화 속 배경은 임신중절을 중범죄로 다스렸던 1960년대 프랑스다. 작가를 꿈꾸는 스물셋 대학생 안은 예기치 못한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아이를 낳으면 미혼모가 되고 낳지 않으려면 감옥에 가야 하는 현실에 부딪힌 안은 당사자가 아닌 사회가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부조리를 목도한다. 안은 임신 확인서를 찢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이를 지우겠다고 결심한다.

시술자까지 처벌했던 당시 프랑스 법률에서 안을 도와줄 의사는 전무했다. 혼전 임신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안의 가까운 주변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촉망받던 문학도였던 안은 점점 고립되고 타자화된다. 자궁에 직접 바늘을 찔러 넣는 등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하는 안은 결국 죽음을 불사하고 불법 중절 시술사를 찾아간다.

오늘날 임신중절 시술은 크게 수술적 방법과 비수술적 방법으로 분류된다. 수술적 방법으로는 날카로운 기구인 '큐렛'을 사용해 자궁 내용물을 긁어내는 '소파술'과 부드럽게 휘어지는 흡입관을 진공펌프와 연결해 자궁 내용물을 흡입하는 '흡입술'로 나뉜다.

비수술적 방법은 중절 약물 복용으로 자연유산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프로게스테론 작용을 차단하는 '미페프리스톤'과 자궁을 수축시키는 '미소프로스톨' 등 약을 복용해 유산처럼 태아를 모체 밖으로 분리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수술적 방법보다 안전한 약물 중절을 권고하지만 임신 주차에 따라 대량 출혈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전문의와 상담은 필수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국내 임신중절 시술 건수는 증가 추세다. 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21년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임신을 경험한 만 15∼49세 여성 3519명 중 17.2%가 중절 시술을 받았다. 이중 수술적 방법은 92.2%, 약물 사용은 7.7%로 나타났다.

영화는 인물을 프레임 중심에 배치하는 1.37대 1의 좁은 화면비를 사용, 관객을 안의 시야각에 가둔다. 안이 겪는 극한의 압박감과 공포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도록 유도하고 자신과 무관한 선택을 강요받는 여성은 과연 어떠한 가치를 우선할지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영화 '레벤느망'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왓챠에서 시청할 수 있다.

박종진기자 trut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