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유통칼럼]'플립'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

KOTRA가 지난해 말 해외에 진출한 한인 스타트업 198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단독 투자로 해외에 나간 비율이 71.2%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예상을 깨고 플립(flip)이 8.6%로 2위를 차지했다. 2020년까지도 워낙 미미해서 조사대상에서 빠졌던 플립이 2021년에는 합자투자나 인수합병(M&A)보다도 높게 나타난 것이다.

특히 지난해 뉴욕증권거래소에 성공적으로 상장한 쿠팡을 보면서 플립에 관심을 갖는 스타트업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플립은 한국에서 법인을 설립해 운영하다가 전략적 이유로 글로벌 진출을 위해 해외(주로 미국)로 본사를 이전하고 기존 한국 법인을 청산하거나 지사로 만드는 개념이다. 이때 한국 회사 주주들은 해외에 신규 설립된 법인 주식과 교환하는 스왑(swap)을 한다. 그래서 해외에 설립된 회사의 주주구성은 한국과 동일하게 된다. 본사를 해외로 이전한 후 한국 회사를 청산하지 않으면 해외 본사가 지분 100%를 소유한 자회사가 된다.

그러나 정작 쿠팡은 우리나라 회사를 플립한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본사를 미국에 두고 미국 쿠팡LLC가 한국에 지분 100%를 소유한 지사를 설립한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이 플립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상세한 전략이 필요하고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 그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로 플립이 불가능한 경우도 발생한다.

왜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까지 기업들은 플립을 진행하려는 걸까.

첫 번째는 우리나라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규모가 큰 미국 벤처캐피털(VC)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미국에 본사가 있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언제든지 회사 상황을 쉽게 파악하고 수시로 경영진을 만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익숙하고 예측 가능한 법·제도를 선호한다.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본사가 한국에 있으면 미국 VC가 한국법을 잘 알아야 하고 관리하기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미국 VC 입장에서는 미국에도 유망한 스타트업들이 많은데 미국에 비해 외환거래나 허가 등 각종 행정절차가 훨씬 복잡하고 까다로운 한국에 굳이 커다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투자할 필요성을 못 느낄 것이다. 인공지능(AI) 솔루션 기업인 뤼이드는 소프트뱅크 투자를 받으며 국내 유니콘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이전을 추진 중이다.

두 번째는 다양한 기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데이터 사이언스, AI 등 첨단 분야 우수인력 확보에 유리하고 우수기술을 보유하거나 비즈니스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세계 유수의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가 용이해지고 보유기술 이전이나 회사 매각 대상이 상대적으로 많다. 스윗테크놀로지스는 인력과 네트워크를 확보한 후 미국으로 이전했으며 260억원 규모 시리즈A 투자도 유치했다.

세 번째는 주요 거래처가 해외에 있는 경우 고객과 원활한 거래를 위해 본사를 해당 국가에 두는 것이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국가별로 각종 허가, 세금제도, 통관절차, 회계처리 방식 등이 상이하기 때문에 아무리 디지털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해외와의 비즈니스에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주 고객이 있는 국가에 본사를 두는 것이 고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는 것이다. AI 기반 스포츠 분석 솔루션 스타트업 비프로컴퍼니는 국내보다 시장 규모가 월등히 큰 유럽 스포츠 시장을 겨냥하며 영국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네 번째는 비즈니스 모델에 따라서 한국에서는 불법이지만 해외에서는 합법인 경우에 당연히 본사를 이전하려고 한다. 대표적으로 원격진료, 법률 플랫폼 분야의 경우 중국, 일본, 프랑스, 미국 등에서는 허용되지만 한국에서는 테스트조차 어렵다. ICT 실증특례 1호 기업 뉴코애드원드는 정부 규제를 피해 비즈니스가 합법인 아랍에미리트(UAE)행을 결정했다.

하지만 플립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의 모든 주주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엔젤 투자나 VC와 같은 기관 투자를 받은 경우는 투자를 받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복잡한 상황에 놓인다.

그리고 한국 회사의 기업가치를 평가해 신설된 해외 법인 주식과 스왑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상당한 세금과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플립을 준비하는 기업이 아직 투자를 받지 않은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세금 문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투자를 받은 경우라면 창업자나 초기 투자자들은 주식을 현금화하지 않았더라도 많은 금액을 세금으로 내야 할 수 있다.

또 한국과 미국 양측 법률, 회계, 세무 전문가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플립 사례를 경험한 전문가가 거의 없다. 플립은 특성상 이론적인 법률, 회계 자문과는 달리 회사 상황에 따라 외환 당국, 한국은행, 기재부 등 여러 정부 기관은 물론 해외 기관과도 직접 소통하고 모르는 절차는 직접 확인하면서 진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상당한 비용과 잘못된 자문으로 좋지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글로벌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기업들이 복잡한 플립 절차를 거치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아예 해외 본사를 설립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미 한국에 회사가 설립되었더라도 아주 초기이고 투자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복잡한 플립 대신 오히려 회사를 새로 설립하기도 한다.
플립은 과거 막연한 꿈을 갖고 미국으로 건너갔던 아메리칸 드림과 확연히 다르다. 확실한 목적과 정교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에 정부도 관련 정보를 수집·분석하고 올바른 길로 안내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수한 기업이 해외로 나가지 않고 국내에서 마음껏 펼쳐 나갈 수 있는 정책과 인프라를 하루빨리 만들어야 할 것이다.

[플랫폼유통칼럼]'플립'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hsryou6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