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권의 에듀포인트]<14>학교, 시험 기출문제 공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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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시험 기출문제 구매 사이트, 언제부터 있는 건데 저작권 위반이라는 거야? 10년도 더 넘었는데 왜 지금 문제라는 거지?”

얼마 전 중·고등학교 중간·기말시험 기출문제 판매 사이트가 저작권 위반이라는 뉴스가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뉴스를 본 많은 학생과 학부모 반응은 동일했다. '무려 10년 전부터 있어 온 사이트인데 저걸 이제 와서 문제가 있다고 보도하는 이유는 뭘까'라는 것이다.

실제 그러하다. 이름만 대면 학생과 학부모 누구나 다 알 만한 유명 중·고등학교 기출문제 판매 사이트가 운영된 것은 적게 잡아도 10년 전이다. 상당수 많은 학생은 해당 사이트에서 기출문제를 구매하고 있다. 해당 사이트는 10여년 동안 엄청나게 많은 학교 시험문제를 판매했고, 언론보도도 상당히 많이 됐다. 현재는 이와 유사한 사이트가 다수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한 고등학교 교사가 자신이 출제한 시험 문제가 인터넷에서 유료로 판매된다며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학교 시험 문제가 법적으로 엄연한 저작물이라는 것이다. 기명 출제는 교사, 무기명 출제는 교육청이나 학교 재단에서 각각 저작권을 갖는다는 대법원 판례를 들었다. 따라서 이를 영리 행위에 이용하려면 저작권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해당 교사의 주장이다. 경찰은 최근 시민단체의 고발을 받아 판매 사이트 한 곳을 수사했다.

10여년 동안 이뤄지던 서비스가 이제 와서 갑자기 왜 저작권 위반으로 문제가 됐는지는 차후 논의하기로 하자. 수사 결과가 나오면 알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왜 학교 시험문제가 거래 대상이 됐는지다. 우선 학생들에게 중간·기말시험은 매우 중요하다. 내신을 잘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신은 좋은 대학을 가는데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된다.

이처럼 중요한 중간·기말고사를 학생들은 잘 봐야 하는데 기존 시험문제가 어떤 유형으로 나왔는지 알기는 어렵다. 그나마 학교 근처 학원을 다니는 학생은 학원에서 나름대로 수년간 해당 학교 시험 문제를 분석한 특강을 받는다. 그러나 학원을 다니지 않는 학생은 알기가 어렵다. 대도시가 아닌 중소도시, 농어촌이나 도서 지역에서는 더더욱 어렵다. 결국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으면 내신을 좋게 받기 어렵다는 얘기다.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기존 학교에서 본 중간·기말시험 기출 문제를 해당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것은 어떨까. 학교 시험문제는 교사가 공적인 이유로 출제한 것이다. 당연히 해야 할 교사의 업무다. 이것으로 개인 저작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공적 이유로 출제한 시험문제이기 때문에 기출 문제를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 학생 누구나 열람하고 공부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이것이 사교육을 받거나 시험문제를 구매한 학생에게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물론 모든 학교가 그렇지 않지만 상당수 학교와 교육당국은 시험 기출문제 공개에 소극적이다. 학생, 학부모는 돈을 주고라도 해당 학교의 시험 기출문제를 구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공부해야 한다.

학교 시험 기출 문제를 사고파는 거래 행위만을 문제삼는 것은 의미가 없다. 왜 이런 상황이 생겼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문제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내신'이라는 이름으로 시험을 보고, 학생에게 줄을 세우게 한다. 학생은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시험을 본다. 한 문제 맞고 틀리고가 인생에서 성공과 실패의 연결고리로 인식한다. 그래서 시험문제를 사전에 유출하는 불법 행위까지 저지른다.

학교가 학생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문제다. 시험 기출문제를 공개하지 않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학교는 갈수록 스스로 역할을 포기하고 학원에 의존한다.

학교가 스스로 교육 주체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치닫는 요즘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학생이 학교를 떠나게 될지 모른다. 고등학교 2·3학년이 되면 검정고시를 보기 위해 자퇴를 택하는 학생이 늘어난다.

학교가 시험을 중요시하고 내신으로 학생에게 줄을 세운다면 적어도 모든 학생에게 기회를 공정하게 주어야 한다. 시험 기출문제 제공이 그 시발점이 됐으면 좋겠다.

신혜권 이티에듀 대표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