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더 나은 한국 만들기

미국이 자국의 첨단산업을 지키기 위한 '더 나은 미국 만들기' 프로젝트를 본격화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의료보장 확충, 대기업 증세 등을 골자로 한 이른바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하고 있다. 법안은 기후변화 대응, 건강보험료 인하 등을 위한 법안으로 7370억 달러를 투자하는 법안이다.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하고 있다. 법안은 기후변화 대응, 건강보험료 인하 등을 위한 법안으로 7370억 달러를 투자하는 법안이다.연합뉴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4400억달러 규모의 정책 집행과 3000억달러 규모의 재정적자 감축으로 구성된 총 7400억달러(910조원) 규모의 지출 계획을 담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2005년 대비 40%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3750억달러를 투입하기로 한 것이다. 자국의 기후변화와 의료보장에 대한 투자지만 이는 '더 나은 미국 만들기'의 일환이다.

특히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해 일정 요건을 갖춘 중고차에 최대 4000달러, 신차에 최대 7500달러 세액 공제를 해 주는 내용이 포함됐다.

다만 중국산 핵심 광물과 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를 혜택 대상에서 빼고, 미국에서 생산되고 일정 비율 이상 미국에서 제조된 배터리와 핵심 광물을 사용한 전기차에만 혜택을 준다. 한국산 전기차에도 불똥이 튀었다.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현대 아이오닉5, 기아 EV6 등이 전량 한국에서 생산되는 것을 고려하면 한국산 전기차는 혜택에서 제외된다. 미국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국내 자동차 업계에 비상이 걸리는 셈이다.

이보다 앞선 이달 9일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반도체 산업육성법'과 일맥상통한다. '더 나은 미국 만들기'의 일환이다. '더 나은 미국 만들기'는 외국의 공급망에 의존하는 대신 미국에서 여러 산업을 일으켜서 일자리를 마련하자는 바이든 행정부의 모토다. 법안은 미국 내 반도체 시설 건립 및 노동력 개발에 520억달러, 첨단 분야 연구 프로그램에 2000억달러를 투입하는 등 미국 반도체 산업에 총 2800억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은 25%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

일단 미국 인텔과 대만 TSMC, 텍사스에 공장을 증설하기로 한 삼성전자 등이 수혜기업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다만 중국에 앞으로 10년 동안 반도체 시설을 짓거나 기존 시설에 대한 추가 투자는 할 수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조만간 장관들과 함께 '더 나은 미국 만들기 투어'에도 나선다. 몇 주 일정으로 23개 주를 돌며 이 법안을 비롯한 최근의 정책 성과 홍보를 극대화하기 위한 행보다.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낮아진 지지율 회복을 위해서라지만 결국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로 이어진 '강한 미국'의 연장선인 셈이다.

첨단산업을 지키려는 시도는 유독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연합(EU) 역시 첨단산업 보호에 나섰다. 중국은 한국의 '칩4 동맹' 가입을 놓고 보복을 운운하는 상황이다.

우리 기업으로는 '미국'과 '중국'을 놓고 선택의 기로에 섰다. 국가 경제 전체로 보면 국내에 유치할 공장과 일자리가 미국이나 해외로 옮겨 가는 상황에 처했다.

반도체, 전기차, 이차전지 등은 첨단 과학과 기술이 종합된 형태로 마련된 산업이다. 이는 하루아침에 완성될 수 없지만 자칫 인재와 기술이 유출되면 삽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과거 첨단산업 발전이 미국에서 일본과 우리나라로 넘어온 상황이 그랬다.

세계는 지금 자국 첨단산업을 지키기 위한 냉전시대를 맞고 있다. 외교적 연대와 신중함이 필요한 시기다. 하지만 국내로 눈을 돌리면 첨단산업을 지키려는 움직임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정부 여당 반도체특별위원회에서 관련 산업 지원법안을 마련했지만 국회에서 논의조차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제 '국민 숨소리도 안 놓치겠다'며 분골쇄신을 다짐한 윤석열 대통령이 움직여야 한다. '더 나은 한국 만들기' 투어라도 나서야 한다. 그래야 한국 경제의 미래가 보이고, 낮아진 민심도 회복할 수 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